오리지널스
누구든 직장에서 어떤 상황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거나 기존 방식에 반하는 의견을 내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반대에 부딪혀 좌절감을 맛보게 되면서 더 이상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지 않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면서 주변의 인정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왜 이 두 사람 간의 격차가 발생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 내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책 <오리지널스>의 저자 애덤 그랜트는 미국 CIA 분석가 카멘 메디나와 인터뷰를 통해 그 방법을 알아냈다. 먼저 그녀의 얘기를 살펴보자.
메디나는 CIA에 근무하는 동안 조직 전체의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신속한 소통을 위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상사와 동료들에게 제안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놀라웠고 지금의 방식에 충분히 좋은 대안이 될 것 같았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그녀의 제안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끈질기게 설득했지만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디어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신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당시 해당 조직으로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된 직원이었다. 조직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아이디어를 신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신뢰를 얻기 위해 수년간 기존 체제에서 묵묵히 일했다. 그녀는 그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면,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씨앗을 뿌릴 기회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제 역할을 열심히 해온 그녀는 10년이 채 안되어 부국장이라는 높은 지위를 얻게 됐다. 충분히 신뢰받을 만한 지위를 얻게 되자 그녀는 다시 한번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CIA가 폭넓은 정보활동을 수행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CIA는 미국의 국가안보 훈장을 받게 되었다.
카멘 메디나는 자신의 의견이 번번이 묵살당했음에도 기회가 올 때까지 끈질기게 버텼다는 점에서 박수받을 만하다. 하지만 모두가 이러한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다. 저명한 경제학자 앨버튼 허쉬만의 저서에 따르면, 인생에서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해결하는 데는 네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한다. 바로 '탈출', '표출', '인내', '방관'이 그것이다.
4가지 선택지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할지는 '자신에게 해결 능력이 얼마나 있다고 느끼는지'와 '조직에 얼마나 헌신적인지'를 바탕으로 결정된다.
해결 능력 O, 헌신적 O => 표출
해결 능력 O, 헌신적 X => 탈출
해결 능력 X, 헌신적 O => 인내
해결 능력 X, 헌신적 X => 방관
조직에 헌신적이었던 카멘 메디나는 먼저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했다. 신뢰 문제로 계속 좌절당하고도 그녀는 묵묵히 기회를 기다리는 인내를 택했다. 이는 그녀가 조직에 충분히 헌신적인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녀가 탈출이나 방관을 택했다면 CIA의 정보국의 부국장을 맡게 되지도, CIA가 안보 훈장을 받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인내는 끝내 결실을 맺었다.
내가 과연 카멘 메디나처럼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자문해보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아직은 어떤 조직에 헌신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물론 좋지만 어디까지나 내 의견이 적극적으로 수용될 때의 얘기다.
그렇기에 나는 회사가 누구든지 의견을 낼 수 있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문화를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뢰가 쌓이고, 헌신적인 마음이 생기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 성장해야 하는 기업이라면 그런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은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것이다. CIA도 진작 그런 문화가 갖춰져 있었다면 좀 더 빠른 발전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