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고서야
당신은 살롱 문화에 대해 알고 있는가? 살롱은 17~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그 시대의 귀족들은 문학, 예술, 과학계 인사들을 집으로 초대해 작품 낭독과, 비평, 자유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초대한 손님들을 맞았던 응접실이 바로 살롱이다. 살롱 문화는 당시 유럽의 생산적인 토론문화를 정착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대 문화사와 지성사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 문화는 19세기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점점 시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가 싶었지만 최근 2년 사이에 뜬금없이 우리나라에서 부활하기 시작했다. 독서 모임 플랫폼인 '트레바리', 함께 운동하는 플랫폼인 '버핏 서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플랫폼인 '크리에이터 클럽' 등 살롱 문화를 계승하는 스타트업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심지어 잘 나가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먼 나라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살롱 붐이 일고 있었다.
책 <미치지 않고서야>의 저자인 미노와 고스케는 일본 최대 규모의 온라인 살롱인 '미노와 편집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살롱을 통해 다양한 멤버가 같은 관심사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글쓰기와 디자인, 동영상 제작, 이벤트 주최 등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유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는 살롱의 인기에 힘입어 이 온라인 살롱에서 많은 돈을 벌어 들이고 있다.
얼핏 보면 그를 시대의 흐름을 잘 읽은 운 좋은 사업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신기하게도 겐토샤라는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회사원이다. 특이한 점은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는 회사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창간 1년 만에 100만 부를 팔아치워 '일본을 대표하는 천재 편집자'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분명 회사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월급도 많이 받을 그가 어떤 이유로 온라인 살롱을 만들게 된 걸까? 그리고 회사는 왜 그만두지 않고 있는 걸까?
살롱 문화는 회사와 완전히 반대의 발상으로 돌아간다. 회사에서는 사원에게 월급을 지불하지만 살롱 문화에서는 멤버가 오너에게 기꺼이 돈을 지불하면서 자체적으로 일을 하는 모양새다. 기존의 노동 구조로 봤을 때 이러한 현상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여기엔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이유들이 숨어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기 시작했다. 특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이 적은 2~30대들은 자신만의 보람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설령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노와 고스케가 운영하는 온라인 살롱, 우리나라에 생긴 수많은 살롱 스타트업들이 잘 나가고 있는 걸 보면 시대가 그러한 흐름으로 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점점 젊은 세대는 안정적인 연봉, 정년이 보장되어 있는 직장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욱 고차원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일한다. 즐거운 일이라면 돈을 내고서라도 하고 싶어 한다.
이 문화의 또 다른 장점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돈을 내고 다니기 때문에 돈 때문에 마지못해 다니는 회사처럼 억지로 다닐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살롱 멤버들은 언제나 의욕적이고 긍정적이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이 문화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보통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하게 되는 회사에서는 그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의욕 넘치는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회사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더 의욕적인 몇몇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도 한다.
미노와 고스케는 이 살롱 문화가 현대인에게 중요한 흐름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 살롱을 만들었고 1년 만에 1300명의 회원을 보유하게 되면서 회사의 월급에 20배나 되는 돈을 벌어 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그는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다. 무엇이 그가 회사를 계속 다니도록 만드는 걸까?
살롱 문화가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항상 더 나은 것일까 묻는다면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다면 본업인 회사에서 성과를 내고 이름을 드높인 뒤 그 이름을 바탕으로 내가 할 일을 정하고 의뢰를 받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회사에서는 충분한 돈과 사람, 인프라를 이용해 대형 프로젝트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 실패하더라도 내가 지불할 비용은 없다. 미노와 고스케는 이러한 회사의 장점을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회사를 이용하라. 회사에 보답하라. 회사와는 진흙탕 같은 관계가 돼라.
하지만 회사 일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시키는 일만 하는 노예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그렇게 노예처럼 취급하는 회사는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업을 금지하는 회사나 경영자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지적하면서, 직원들을 적극적으로 바깥으로 보낼 때 비로소 그들의 진가가 발휘된다고 강조한다. 그런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면 직원은 자신의 이름과 능력으로 어떻게든 돈을 벌어와야 하며, 자신을 시장에 적극적으로 노출하고 자신에게 달려있는 가격표를 의식해야 한다.
자신의 가격표를 의식하지 않으면 평생 누군가가 먹여주는 돼지로 남을 뿐이다.
돼지가 아닌 굶주린 늑대가 돼라.
나는 씽큐베이션이라는 독서 모임을 통해 앞서 말한 살롱 문화의 장점들을 누리고 있다. 미노와 고스케의 온라인 살롱과 다른 점은 감사하게도 무료라는 것이다. 매주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그 내용을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는 이 경험은 내게 회사에선 잘 느끼지 못하는 설렘과 즐거움을 준다. 작성한 서평을 블로그에 올려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내 가치를 알리는 것 또한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경험이다.
그래서 회사 일 때문에 책 읽을 시간, 서평 쓸 시간이 부족해질 때마다 '그냥 회사 그만두고 이 활동에 집중할까' 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하지만 내가 책을 통해 배운 것들을 행동으로 옮겨 볼 수 있는 곳은 지금으로선 다니고 있는 회사가 유일하다. 개발자라는 본업에 맞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곳 또한 지금의 회사다. 이런 이점들을 아무런 준비 없이 포기해 버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다행히 <미치지 않고서야>를 읽고 이런 마음가짐을 다잡게 됐다.
회사라는 인프라를 당당하게 활용하고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실패도 해보면서 유의미한 성과로 회사에 보답하는 것, 그 경험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직접 부딪쳐가며 내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 이 두 가지는 나를 포함한 모든 회사원들이 현재와 미래를 현명하게 살아갈 방법이 아닐까 싶다.
Q. 저는 아직 지금의 회사 일에 열광하진 못하고 있는데, 혹시 회사 일을 정말 열정적으로 하고 계시는 분이 있나요? 혹은 그런 경험이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