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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Feb 28. 2020

늘 불경기, 또 불경기

우리는 태어난 이래 늘 블경기였지

나는 밀레니얼 세대 인간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기준연도는 연구 및 조사 기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 1980년부터 1996년까지다. 이들이 전세계 소비 시장의 큰 축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각종 업계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물론 김난도 교수가 2020년 트렌드 키워드로 소비의 큰손으로 '오팔세대(58년 전후, 퇴직한 베이비붐 세대)'를 꼽긴 했어도


밀레니얼 세대는 몇십 년 더 노동을 할 것이고, 그만큼 소비할 것이니 이들에게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기관이나 유통업계 등에서 밀레니얼 세대에 대해 열심히 연구한다는 게 재미있다.

흔히 말하는 '꼰대'가 되지 않는 매뉴얼이 생기는 것과 <90년생이 온다>는 제목의 책이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도.


가끔은 외계인이 된 기분이다.

새로 발견한 우주 생명체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들을 관찰하듯 밀레니얼 세대의 행동 패턴을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우리를 두고 무슨 족, 무슨 족 하며 수많은 이름을 붙인다.


소비와 직결되기 때문에, 또는 우리를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지금껏 봐온 중 가장 말 안 듣는 인간들일 테니.


우리는

 '물을 사 먹는다고?'라는 질문과 그 답을 동시에 한 세대다. 휴대전화의 탄생과 집집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MS DOS가 WINDOWS로 바뀌는 것을, 집 전화 선이 사라지더니 마침내는 누구나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보았으며, 공상과학 사생대회에서 그렸던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실현된 세대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그때그때 필요할 때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로 살아갈 수도 있다. 플랫폼 노동자 중 한 명으로서, 플랫폼 노동이 밀레니얼 세대가 가진 특징의 집약체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모바일 편리성, 인간관계 최소화, 가성비, 하고 싶을 때만 일하는 시간 유연성 등. 거기에 더해 이 세대의 다른 특징들, 집돌이 집순이, 미코노미(Me+economy) 등이 겹치면서 끝없이 배달을 시켜먹는 자들과 끝없이

배달을 가는 자들이 생겼다.


다시 돌아가, 우리는

IMF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박살나고 있는 가정에서 사춘기의 반항심 또는 낭만적 감성 등은 자기 책상 서랍에 고이 넣어두어야 할 터였다. 죄책감으로 몇날 며칠을 괴로워할 바에야 심술이나 짜증도 같이 묻어두는 게 나았다. 많은 걸 누렸지만 또 많은 걸 포기하기도 하고,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하다는 것도 체득한 세대.


이제는 '노력' 타령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지만

우리는 많이 공부하고 많이 배웠다. 오죽하면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IMF를 가까스로 넘기고 대학생이 되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발했다. 월스트리트의 증권, 금융사가 파산했고 세계 경기가 얼어붙었다. 몇 년 전 선배들만 해도 별 걱정 없이 취직했다던데, 우리는 아니었다. 만 점에 가까운 토익, 학점, 각종 봉사활동, 수많은 경험, 이것들을 '스펙'이라 불렀다. 기계에 썼던 용어가 인간에게 적용되면서


인간적 가치보다는 부품으로서의 가치를 중시하는,

세계의 한 부품으로서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삐걱삐걱 살아간다.


우리는 살아온 이래 불경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청소년기에는 IMF로, 커서는 서브프라임으로, 그 이후에는 고도화된 성장으로 인한 침체, 언론의 중상모략까지. 항상 불경기다. 한 번도 경기가 좋은 적이 없었다.


우리는 호(好)시절이라는 걸 모른다.


우리더러 참을성 없다고 말하는 기성세대에게 사실 우리는 기약없는 불경기를 참고 견디며, 미래도 희망도 없을 것만 같았던 컴컴한 동굴을 더듬대며, 중간중간에 이만큼 왔다고 SNS에 인증하기도 하며, 걸어왔다고 말해도 될까.



어제는 운 좋게 건이나 배달했는데

더욱 운 좋게도 그중에 세 건이 쥬씨였다. 두 번째로 매장에 픽업 갔을 때 쥬씨 사장님이

"배달 건수가 확 줄었죠?"

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어제까지는 프로모션에 넘어간 라이더가 많아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매출이 완전 반토막이네.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큰일이야."

사장님은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었다(위생장갑을 끼고 쥬스를 만드신다).


식당에 손님이 줄어서 배달 주문이 늘어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그냥 다 장사가 안 되는 거다. 어쩌면 쥬씨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경기가 안 좋으면 끼니는 어쩔 수 없이 챙겨도 디저트는 당분간 참을 수도 있는 거니까(그러면서도 어제 쥬씨에 배달을 세 번이나 간 건 아이러니다).


나는 긴말 않고 생과일 쥬스를 챙겨 출발했다.

지금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 입는 타격은 감히 상상도 못할 것이다. 쥬씨 사장님의 하루 매출이 내가 배달한 세 건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불경기만 살아온 불경기 전담 밀레니얼 세대로서

코로나19 때문에 위기 상황에 놓였을지도 모를 단골 순댓국집에서

순댓국이나 한 그릇 포장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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