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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Mar 09. 2020

배달 음식 시켜 먹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나는 배달 음식을 잘 시켜 먹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배달 음식은 양이 많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나에게는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닭볶음탕을 하나 시켰다. 그러면 저녁에 먹고, 다음 날 아침에 밥 비벼 먹고, 저녁에 또 먹고, 그 다음날 아침에 볶음밥까지 해먹어야 끝난다. 같이 사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이다.


그리고 쓰레기들.

일회용 그릇에 담긴 음식과 나무젓가락, 쏟아지지 않도록 꽁꽁 싸매놓은 랩까지. 하나만 시켜도 딸려오는 쓰레기가 너무 많다. 


대단한 환경운동가도, 제로웨이스트를 정확하게 실천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일회용품만큼은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배달 음식과 함께 오는 일회용품들이 부담스럽다.


어제는 같이 먹을 사람이 있기도 했고

며칠 전에 누군가와 '엽기떡볶이'에 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나누었던 바람에 떡볶이를 배달시키기로 했다. 


새벽 1시쯤이었다. 엽기떡볶이 가게는 문을 닫았고 아쉬운 대로 리뷰가 좋은 가게에서 시켰다. 떡보다 어묵을 많이, 매운맛 2단계, 같이 먹을 사람이 중국당면을 좋아한다기에 중국당면을 추가해서.


"근데, 이 시간에도 배달이 와?"

"당연하지."


나는 내가 배달을 하면서도 새벽 1시 이후에 배달이 오는지 몰랐다. 그만큼 야식에는 무지한 편이다. 우리나라에 야식을 파는 가게가 그렇게 많은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밤에 잠도 안 자고 장사를 하고 있는지 몰랐다. 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밤에 잠도 안 자고 뭔가를 먹는지도. 나는 굉장히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1시 40분쯤 떡볶이가 도착했다.


내가 가져다 주는 음식이 아니라

누가 가져다 주는 음식을 먹으니 괜히 황송했다. 어찌나 빨리 가져다 주셨는지 너무 뜨거워서 혀를 델 뻔했다. 적당히 매웠지만 입에 불이 나겠다 싶을 정도로 맵지는 않았다. 매일 새벽에 방앗간에서 떡을 뽑아 떡볶이를 만든다는 광고문구처럼 떡이 쫄깃쫄깃해서 맛있었다. 맛있는 걸 먹었더니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너무 편했다.

집에서 똑같이 해먹는다 치면, 떡, 어묵, 메추리알, 비엔나소시지, 중국당면, 그리고 갖은 양념들이 필요하겠지. 양념 배합을 제대로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랬다간 니맛내맛도 아닌 맹숭맹숭한 떡볶이가 만들어질 터. 그런데 터치만 몇 번 해도 떡볶이를 현관문 앞까지 가져다 준다니.


아아. 나는 왜 배달을 하면서 배달음식을 시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나.

안 해봐서 그런 거다. 해보니 좋은 걸 알겠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배달문화에 깜짝 놀란다더니, 당연히 놀라겠다. 


어느 정도 먹고 나니

쓰레기가 산더미다. 나무젓가락과 나무젓가락을 싸고 있던 종이, 비닐, 랩, 플라스틱 그릇. 거기에 땀 닦고 입 닦은 휴지더미까지. 재활용되는 것들은 분리하고, 쓰레기만 쓰레기통에 꾹꾹 눌러담았다. 그리고 남은 떡볶이는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내 나름의 간헐적 단식은 계속 이어가고 있으므로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방탄커피 한 잔으로(오일을 바꾸었더니 효과가 좋다), 그러고 나면 오후 다섯시쯤 되겠다. 저녁 때쯤 되지 싶다. 집에 가서 남은 떡볶이랑 저녁밥 먹고 오늘의 배달을 떠나야겠다.


어제 늦은 시간에 떡볶이를 배달해주신 배달부에게 감사한다.

늦은 시간까지 떡볶이를 만들어주신 가게 사장님에게도.

늦은 시간까지 같이 떡볶이를 먹어준 님에게도.


모두들 맛있는 음식 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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