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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Mar 11. 2020

3월 초의 기분

꽃도 개강도 없는

어쩐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는 아득하다.


매년 겪으면서도 겨울 다음에 봄이 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추웠는데 따뜻해진다니. 봄에서 여름은 조금 더 뜨거워지고, 여름에서 가을은 반갑고, 가을에서 겨울도 조금 더 차가워진다는 느낌인데, 유난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초입은 넘어가기 힘든 구간이다.


농경사회였던 아주 먼 옛날에는 씨를 뿌리는 3월이 한 해의 기준점이었단다. 그런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달력을 만들면서 아주 엉망진창이 됐다고. 빨리 취임하고 싶어 1월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카이사르가 11월을 1월으로 바꾸면서 두 달씩 밀렸다. 그러니 사실 지금이 1월인 것.


만약 3월이 1월이었다면, 그래서 3월이 한 해의 시작점이었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연출되겠다.


바들바들 떨며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는 검정색 롱패딩의 행열이 아닌, 사실 아직 춥지만 트렌치코트나 재킷을 입은, 혹은 색색의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새해를 기다렸겠지.


1월 1일보다 3월 1일이 설렌다.

모든 3월이 그랬다.


여덟 살이 되던 해에는 초등학교 입학을 해서, 그 이후로는 학년과 반이 바뀌니까 설렜다. 그중에서 가장 설렜던 3월은 역시나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듯,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갔던 구간. 마침내 대학생이 된 것이다.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던 3월이었다.


나무에 조금씩 싹이 돋기 시작하고 꽃나무에는 꽃봉오리가 맺히면서 교정이 조금씩 조금씩 분홍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밤새 마시고 토했으며 9시 수업에 퀭한 얼굴로 나타나 술냄새를 풍기곤 했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그게 술 기운 때문인지 봄 기운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매년 3월은 몹시도 추웠는데

그건 아마 3월이라는 기분에 옷을 너무 얇게 입은 탓일 거다.


남학생들은 티셔츠에 얇은 재킷을, 여학생들은 3월이 되면 검정색 타이즈 대신 살색 나일론 스타킹을 신었다. 예쁜 옷을 입을 수 있는 3월만을 벼르고 있던 대학생들에게 별안간 찾아오는 꽃샘추위 따위는 반드시 견뎌야만 했던 시련이었다. 꽃샘추위라고 절대 패딩을 다시 꺼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도 내가 대학교에 적을 두고 있게 되었을 때

나는 3월 새내기들이 어찌나 추워 보이는지, 나도 정말 저러고 다녔는지 기억조차 의심되었다.


그래도 그때

엉성하게 왁스를 발랐는데 너무도 거센 바람이 불어 개판이 되기 직전인 남학생들의 머리 모양이, 공들여 화장을 했는데 아직은 자리를 잡지 못한(요즘엔 고등학생들도 화장을 전문가처럼 하기도 하지만) 화장 스킬에 붕 떠버린 여학생들의 얼굴을 보는 게 즐거웠다.


3월은 그랬다.

뭐든 새로 시작하는, 날씨는 겨울과 봄에 어정쩡하게 걸쳐져있지만 이제 완전히 겨울은 끝났다는 안도감이 드는, 하지만 이내 그 안도감을 배신당하는, 그러다 보면 별안간 세상이 봄으로 바뀌어버린 걸 알아차리게 되는, 그러다 까무룩 졸고 나면 눈앞의 풍경이 바뀌어버리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나른해지고 마는 그런 달이었다.


올 3월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달이다. 학교가 개학 및 개강을 하지도 못했고, 산수유, 매화, 목련이 폈는지 안 폈는지 벌써 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게 실감나지도 않는다.


겨울옷을 집어넣기도 아쉽고, 봄옷을 꺼내기에는 이르고, 대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그러면 잔디밭에 앉아 막걸리를 마실 일도(너무 옛날 스타일인가) 없을 거고, 학교 앞 주점에서 술게임을 하는 소리, 스무 살, 스물한 살들의 흰소리, 억지로 커플을 만드는 장난들도 다 같이 숨죽여있는 3월이다.


이렇게 3월을 보내자니 아쉽다.

3월만큼은 어설퍼도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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