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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Jun 01. 2020

만년필이 남았네

그때가 몇년도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애인이 있었고, 애인과 좋았고, 애인과 싸웠고, 또 싸웠고, 헤어졌다. 헤어진 건 2012년 9월이다.


고등학생일 때 무지 좋아했는데 왜 좋아했는지 역시 기억도 안 난다.

우리는 다시 만날 때까지 몇 번이나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었으나 서로에게 업데이트된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연락도 한번 안 하면서.


어느 여름에 그애를 엔젤리너스에서 만났다. 프린팅이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여전히 참 하얗다고 생각했다. 그애는 우리나라 취준생들이 선망하는 회사에 합격하여 입사를 앞두고 있었고 나는 취준생이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매주 만났다. 시간이 많은 내가 가는 게 이치에 맞았으나 대부분 그애가 퇴근 후에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었다. 시간이 늦어도 맛있는 거 먹고, 술 마시고, 재미있게 놀았다. 그애는 아주 바쁜 직장인이라 멀리 놀러 가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여기저기 다녔다.


나는 그때 너무 바보였다. 내 마음은 나로 빡빡하게 들어차 있어 그애를 헤아릴 조금의 틈도 없었다. 어쩌면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무기력했던 나는 취직에 큰 뜻을 두지도, 앞날에 계획이 있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그애랑 헤어지고, 그애가 내가 있는 쪽으로 출장을 올 일이 있어서 나를 찾아왔었다. 그리고 나는 그애에게 참 매몰차게 굴었다. 우리의 마지막은 고속터미널에서였다. 내가 카키색 자켓을 입고 있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터미널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햇빛에 눈이 부셨고 그애는 울었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애를 쳐다봤다. 그애가 버스를 타고 떠나는 걸 보고 이제 다 끝났다고,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고속터미널이 아니다. 그 뒤에 그애가 한번 더 왔다. 그애랑 곱창을 먹고 을지로 가서 골뱅이에 소주를 마시고 그애는 많이 취했고 나는 화가 났었다. 차라리 고속터미널에서가 마지막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또 옛날처럼. 

그리고 나는 종종 그애를 떠올리면서 죄책감 같은 게 들곤 했었다. 하지만 다시 연락할 수는 없었다. 연락한다고 그애랑 어떻게 해볼 것도 아니고, 그애가 나를 나쁘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친구로 지낼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별안간 그애가 준 만년필이 나타났다. 

언제 줬는지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내 이름까지 각인된 만년필이다. 보급형 라미 제품. 샛노란 색깔이 나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애가 왜 노란색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난감하게도 처음에는 파란색 잉크 카트리지가 꽂혀 있었다. 당연히 파란색 만년필을 쓸 일은 거의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만년필 뚜껑을 열어보니 잉크가 닳아 없어져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글자도 쓰지 않았는데.


파란색 카트리지를 버리고 검은색 카트리지를 꽂았다. 만년필로 뭘 써볼까, 생각하면서.

아마 나는 앞으로도 만년필을 쓰지 않을 것이고, 검은색 카트리지도 시간이 흘러 사라지고 말겠지. 


죽는 날까지 그애를 잊어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애랑 같이한 기억들이 다 가물가물하다. 검은색 잉크가 세월이 흘러서 스스로 닳아버릴 때쯤엔 그애의 이름 정도만 기억날지도 모른다.


사진도 기억도 다 사라지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만년필이 남았다.

만년필로 그애한테 편지를 써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나는 그애에 관해서 아는 게 없다.


다만 쓰지도 않을 거면서 버리지도 못할 물건이 하나 더 늘어버렸다.

언제나 만년필은 너무 뾰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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