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라도 떠나야 할 것처럼

서울시 강서구 공항동

by 김로진

항상 여행보다 공항가는 길이 더 설렜다.

빠진 것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던 밤과 눈 뜨자마자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가는 새벽 또는 아침의 설렘. 여행의 즐거움은 '가방 싸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도 비행기라는 탈것이 신기하다. 커다랗고 육중한 몸뚱이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 달려 나가는 엄청난 속도, 그리고 하늘길과 규칙, 사람도 많이 타고 짐도 많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고 떠 있다는 그 사실들은 아직도 놀랍고 궁금하다.


공항동에 살게 된 것이 자의는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돈 때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나쁜 선택을 한 것 같다. 같이 살던 친구와 같이 살면서 생기는 문제로 싸우고 싸우다 결국 사이가 나빠졌다. 이게 다 공항동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다.


처음 놀러가서 본 공항동은 어딘가 기시감이 있어 전에 한 번 와봄직한 동네였다. 낮고 낡은 건물들, 오래된 상가, 좁은 골목길. 전형적인 낡은 동네. 그리고 걸어서도 김포공항에 갈 수 있는 동네.


공항동은 일제시대 군사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그 일대 거주민들을 외곽으로 보내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나름대로 오래된 동네여서인지 꽤나 낡았다.


그러지 않아도 낡은 동네, 옆에 마곡지구가 개발되면서 더 낡고 초라해 보인다.

빽빽한 빌라들, 그리고 그 1층에는 중국, 베트남으로 보내는 물류업체, 그 앞에 가득 쌓인 상자, 알 수 없는 언어, 좁은 골목길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트럭.


공항으로 가는 길엔 키 큰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데, 여름이 오면 매미와 모기가 장성하여 서로의 기량을 뽐내곤 했다. 매미 우는 소리에 잠 못 들거나 모기 잡느라 잠 깨느라 길고 긴 여름밤을 보냈다.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 경적 소리, 때로 경찰차가 누군가를 쫓아가며 "정지! 정지!"하고 외치는 소리가 라디오처럼 들리곤 했다.

방충망 틈 사이로 엄청난 모기떼가 들어왔다

놀러 나가려면 송정역으로 나가야 하는데, 거기라고 별 뾰족한 수는 없다. 송정초등학교 뒤편으로는 간판도 '무허가집'이고 실제로도 무허가집이었다는 식당들이 있다. 대낮부터 고주망태가 된 할아버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해가 지기라도 하면 큰소리로 실체도 없는 대상을 부르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려온다.


송정역에서 공항대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마곡이다. 마곡지구가 개발이 되었으나 그래도 잘 놀고 싶으면 발산까지 가야 한다.

김포공항으로 가서 비행기 타고 가버리든, 마곡 발산으로 놀러 가든, 어쨌든 어디로든 가야만 하는 동네다.


하루에도 수십 대의 비행기가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낮게 뜬 비행기를 볼 때마다, 그냥 당장 김포공항으로 가버릴까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별일 없는데도 자꾸만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터미널> 주인공 나보스키(톰 행크스 역)가 JFK공항에 갇힌 것처럼, 공항동에 살 때는 마치 공항에 갇힌 기분이었다. 어디론가 가야 하는데 못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매일을 보냈다. 논문을 쓰고 일을 하면서도 나는 도대체 왜 여기에 머무르고 있나. 떠나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봉천동과는 결이 다른 답답함이었다. 봉천동에서는 목표를 위해 어디에선가 모여든 사람들, 그리고 포기한 사람들, 오래 전부터 지속된 가난, 남루한 살림살이. 그런 것들이 나를 환장하게 했다.


공항동에서는 내가 여기 왜 계속 있지? 싶었다. 여긴 공항이고, 비행기가 지금도 계속 날아가고 있는데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공항동이다. 바람 쐬러 밖에 나가 봐야 낡은 동네에 싸구려 술집들. 아주 젊은 아이들과 강화도에서 군생활 하다 휴가 나온 젊은 해병대 군인으로 소란스러운 거리 뿐이었다.


나는 송정역에 모여드는 젊은이들처럼 젊지도 못했고, 공항동에 원래부터 거주하던 사람들처럼 늙지도 못했으며 직장이 김포공항도 아니었고 마곡지구도 아니었다.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경계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고 느꼈다.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이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경계선을 밟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공항 근처 직장을 다녔더라면, 아니면 그 수많은 젊은이들처럼 항공기술을 배우고 있었더라면 덜 우울했을 것 같다. 공항동은 자전거를 타고 금방 공항 롯데몰로, 마곡지구로, 서울식물원으로, 한강으로 갈 수 있는 평평하고 살기 좋은 동네니까.


하지만 늘 보따리장수 같은 삶을 사는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이방인은 끝없이 사회와 조화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법이다.



그래도 매일 해는 서쪽으로 넘어갔다.

공항동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동네였다.


그 시절 나는 경계 너머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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