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가 아닌 제주 어느 동네

제주시 용담2동

by 김로진

용담2동의 이야기를 한 편에 다 쓸 수 있을까.

남들은 책 한 권 분량으로 쓰던데.


한때 제주살이가 유행했다.

수많은 이들이 아이와 함께, 부부나 연인이, 혼자서 제주로 떠나왔다.


제주도라는 섬이 하나의 커다란 소망을 담는 그릇 같았다. 너도 나도 제주에 살고 싶어 했고, 제주도에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기대감을 한껏 품었던 것 같다.


한창 제주도에 오다닐 때 땅이라도 한 평 사두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미래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는 노답인간이었으니 땅이 있을리 만무했다.


별 생각 없이 제주도로 내려갔다.

소위 말하는 힐링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팍팍한 도시에 치여 살지도 않았으며 딱히 마음정리 할 것도 없었다. 그냥 갔다. 어쩌면 심심해서 간 걸지도 모르겠다.

육지에서 집을 알아보고, 계약을 했다. 무려 석 달이나. 그냥 그 집 계약 조건이 그러했기에 석 달을 지내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까진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제대로 석 달을 보낸 건 아니다. 두 달 남짓 지냈던 것 같다.


내가 지낸 곳은 관광지가 아니고 원래 제주 사람들이 지내는 동네였다. 2층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다. 가까이 공항이 있고, 걸어서 5분만 가면 바다였다. 오직 그 이유만으로 덥썩 계약했다.


처음 계획은 그랬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하고, 작업을 하고, 하루에 한 번은 맛있는 걸 먹자. 일은 하지 말자. 있는 돈을 까먹고 살자. 올레길을 걷자.


결과부터 말하자면 한 번도 조깅을 안 했고 올레길은 단 한 코스를 걸었다. 손님이 오지 않으면 맛있는 건 안 먹었고 일은 더럽게 많이 했다. 계획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조용한 동네였다. 사람 소리는 하나도 안 나는데 새벽부터 밤까지 비행기는 엄청나게 많이 다녔다. 어떤 날엔 비행기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숱한 밤을 잤지만 가정집에서 자는 건 처음이라, 제주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첫 날부터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일단 제주도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보일러를 떼려면 기름집에 전화해서 기름을 넣어야 한다.


등유 한 드럼을 넣으니까 20만 원쯤 되었는데, 그걸로 석 달을 잘 썼다. 원래 살짝 춥게 지내는 편이라 석 달을 썼지 그렇지 않았으면 두 번은 넣어야 했을 것 같다.


그리고 티머니 카드가 꼭 필요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 동네 또는 아파트 단지가 있지만 적어도 내가 사는 곳에서는 아니었기에 부랴부랴 티머니 카드를 사서 충전했고, 육지로 돌아와서는 한 번도 쓴 적이 없어 몇 백원 남은 티머니 카드가 아직도 집안 어딘가에 굴러다닌다.


용담동은 제주도의 상징 같은 용두암이 있는 동네다.

용두암을 빠르게 발음하면 용담이 되지만 이건 그냥 하는 소리다.


제주도 현지인이 대부분인 동네고, 관광산업이 발달한 곳은 아니다. 주변에 맛집이라 불릴 곳도 많지 않다. 하지만 소문 안 난 식당 중에 진짜 죽여주는 데가 많다. 소문이 안 났으니 관광객 입장에서 스스로 찾아가기는 쉽지 않겠다.


식당에 가면 대낮부터 중년 남성들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제주도는 한량 남자의 섬이다. 섬 지형상 예전부터 그래왔단다. 여자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게 당연시 되는, 그러니 제주도를 만든 신도 설문대할망이다.


나른하고 바람 많이 부는 동네였다. 비행기가 자꾸 날아가는 모습을 마치 고양이가 창문 바라보듯 지켜보았다. 색색깔의 비행기가 육지를 향해 날아갔다. 비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 비행기가 뜰까 싶던 날에는 왠지 비행기도 위태로워 보였다.


내 제주도 생활은 멍하니 바다를 보다 정신차리고 일 마무리하거나, 술 마시거나 둘 중에 하나로 점철된다.

유명한 카페나 맛집을 찾아 가지도 않았고 특별히 뭔가를 한 것도 없다. 일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외롭지는 않았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쪽이 가깝다.

바다는 언제나 거기 있었고, 자기 속도 대로 밀려왔다 밀려갔고, 비행기도 그랬고, 모든 게 그냥 거기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는 이 없고, 길에서 마주치는 그 누구도 나를 모르고 나도 그를 모르는 동네에 유폐되어 완전히 혼자가 된 상황과 느낌과 기분을 만끽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옆에 있어줄 거라 기대한 누군가가 있어야 비로소 생기기 시작한다.

인간에 관한 모든 기대를 육지에 내버려두고 떠났기에 혼자였지만 외롭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조용하고 편안했다. 관광객으로서의 자아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래서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갔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 가서 목욕하고, 버스타고 여기저기 다니고, 버스 기다리기 너무 귀찮으면 카셰어링 이용해서 잠시 다녀오고. 뭐 그런 생활.


다음에 또 제주도 한달살기(또는 두 달, 석 달 살기)를 한다면 관광지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협재라든지 함덕, 월정리 이런 곳.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곳에 살면 어떨까. 제주도에서 이름 알려진 동네에 산다면 재미있을까?


그때는 용담2동에 살 때처럼 정적이고 고요한 삶이 아니라 매일 밤 펍 가서 술 마시고, 유명한 커피집 가서 커피 마시고 주변 맛집 찾아 다니고 해수욕장 가서 불꽃놀이 하고, 뭐 그렇게 매일매일 여행자처럼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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