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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Apr 21. 2021

[넷플릭스 영화] 파이브 피트

스포가 있습니다.


*


내 병은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때 대학병원에서는 굉장히 암울한 시나리오를 짰지만 다행히도 그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빗나갔는지, 그들이 말한 그 시기가 늦게 찾아올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때부터 나는 죽음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러자 양가적인 감정이 찾아왔는데,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뭐든 해 보자는 마음과 동시에 내가 희망을 가져 봐야 뭐 하냐는 자조였다.

아픈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다. 굳이 영화나 책까지 찾아 볼 필요는 없는 일이다. 이 영화를 무슨 생각으로 보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픈 사람에게 욕심이 생겼을 때, 얼마나 처절해지는지 나는 극히 조금 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실 내가 아픈데, 라고 말해야 할 때,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상대방이 괜찮다고 말할 때 나는 자주 마음이 아팠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텔라는 낭포성 섬유종을 앓고 있는 환자다. 그에게 남은 삶이 그리 길지 않을 테지만 열심히 산다. 낭포성 섬유종에 관해 알리는 유튜버다. 동시에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 병 때문일 거다. 같은 병을 가진 사람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스텔라는 열심히 치료받고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스텔라의 언니 애비는 다이빙 사고로 죽었다. 스텔라가 하고 싶었던 일을 대신 해주다 일어난 사고라 스텔라는 언니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부모를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은 까닭에 더욱 강박적으로 치료를 받는다. 


병원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낸 스텔라는 신생아실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그때 윌이 나타난다. 윌은 스텔라와 같은 병을 앓고 있다. 폐 이식도 불가한 상태라 임상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강박적으로 치료를 받는 스텔라와는 반대로 약도 대충, 치료도 비협조적이다. 스텔라는 윌을 보면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온 힘을 다해서 치료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대충하다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결국 둘은 딜을 하는데, 윌이 치료를 잘 받는 대신 스텔라가 윌의 그림 모델이 되어주는 거다.


스텔라에게는 친구가 하나 있다. 포라는 이름의 이 친구 역시 같은 병에 걸렸다. 병원에서 동고동락했으니 가족 같은 친구. 포는 게이다. 애인이 있지만 병 때문에 밀어내는 중이다. 참 어렵다. 이 병을 가진 이상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상관없이 연애하기 쉽지 않다. 멀쩡한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이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간호사는 이들이 친해지는 것을 염려한다.


스텔라의 배에 꽂은 튜브에 염증이 생겨 수술을 하러 들어갔을 때, 윌이 숨어있다가 화이팅을 해주고 간다. 그 모습을 본 간호사는 그들을 떨어뜨려놓으려 한다. 이미 한번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병을 앓던 아이들이 결국 가까워지고, 눈앞에서 죽었다. 간호사 입장에서는 두 아이를 다 지키는 게 최선이기에 스텔라와 윌이 가까워지지 않아야만 한다.


결국 가까워진 두 사람. 두 사람은 당구대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한다. 서로가 안전할 수 있는 거리다.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저 그 정도를 유지하는 게 최선이다. 만질 수도, 가까이 갈 수도 없다. 그래도 그들은 서로 의지한다. 


윌의 생일, 스텔라와 포는 윌 몰래 깜짝파티를 준비한다. 윌의 친구들도 다 모인다. 생일을 함께 보내주지 않아 시무룩한 윌을 보면 영락없는 애다. 스텔라와 포, 친구들과 함께하는 파티는 아름답고 위태롭다. 파티장면만 보면 너무도 평범한 청소년들 같고, 이들이 앞으로도 이렇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긴다. 심지어 포는 생일파티에서 애인을 다시 만나기로 했고, 부모님도 뵙기로 했다며 발표한다.


그래봐야 이들은 간호사의 손바닥 안이다. 결국 발각되고 해산한다. 그것도 모자라 윌과 스텔라를 다른 병원으로 떼어놓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갑작스럽게 포가 죽는다.


포의 죽음을 목격한 스텔라는 이성을 잃는다. 어차피 죽을 텐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어디에도 갈 수 없이 이렇게 살다가 갑자기 죽어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처음으로 병원 밖으로 나간다. 병원 너머에 있는 불빛을 보러. 그때 처음으로 손도 잡아 보고, 빌어먹을 당구대도 없이 가까이 앉아서 이야기도 한다.


그때 병원에서 연락이 온다. 스텔라에게 딱 맞는 폐가 왔다고, 이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토록 기다려온 순간이었는데도 스텔라는 돌아가지 않고 윌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 아직 불빛도 보지 못했다. 윌은 스텔라를 데리고 가려고 하지만 스텔라가 얼음 호수에 빠지고 만다. 윌은 호수에 뛰어들어 스텔라를 구한다. 그런데 스텔라가 숨을 쉬지 않는다. 인공호흡을 해야 하는데, 하지 말아야 하는데, 윌의 머리가 복잡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은 비극이다.


결국 인공호흡을 하고, 쓰러져있는 이들을 병원에서 데리고 간다. 스텔라는 폐 이식 수술을 마쳤다. 윌의 임상실험은 실패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윌은 떠나기 전, 스텔라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긴다.


스텔라가 눈을 떴을 때, 병원 밖에는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다. 그 사이로 윌이 걸어온다. 둘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있다. 눈을 감아달라고, 네가 보고 있으면 떠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윌과 어쩔 수 없이 눈을 감는 스텔라. 그리고 윌이 남겨둔 선물 속에는 포와 스텔라를 그린 그림들이 가득했다.


*


대충 예상할 수 있는 클리셰들이 가득한 영화임에도 많이 울었다. 울라고 작정하고 만든 장면들이기에 그냥 울었다. 둘이 헤어져서 슬픈 것보다, 윌의 임상이 실패해서 더 슬펐다. 스텔라 역시 폐 이식을 받는다 해도 길게 살기는 어렵다. 사람은 왜 아플까. 신체라는 이 작고 복잡한 덩어리는 사람을 자꾸만 슬프게 한다. 


사랑해서 떠난다는 건 대부분 말이 안 되지만 어떤 사랑은 떠나야만 완성되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도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윌과 스텔라도 그러면 좋을 텐데 불가능한 이야기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옆에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간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실컷 표현하고, 사랑해야 한다.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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