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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Apr 22. 2021

[넷플릭스 영화] 케빈에 대하여

스포가 있습니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 기적이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쪽이 더 절대적인 것 같다. 아이일 때 이야기다. 부모는 아이의 유일한 세계다. 잘났든 못났든, 부자든 아니든 아이는 부모를 사랑한다.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 영화를 본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강렬하게 기억되는 건, 에즈라 밀러의 미모가 큰 지분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연출과 색채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면 장면에서 받은 인상들이 쉽게 지워지지가 않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에바는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행작가다. 광기에 가까운 토마토축제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토마토의 붉은색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다른 형태로 변모한다. 그런 에바에게 계획에도 없던 아이가 생긴다. 그 아이가 바로 우리의 문제아 케빈이다. 케빈은 태어났을 때부터 당황스러울 정도로 애 같지가 않다. 계속해서 엄마를 곤경에 빠뜨린다. 에바도 잘 해보려고 한다. 어르고 달래며 키워보지만 쉽지 않다.


공놀이 하는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억지로 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아기 케빈도 뭔가를 다 알고 맞춰주는 것만 같다. 어릴 때부터 너 때문이다, 너를 낳기 전이 훨씬 더 행복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에바를 보며 받을 케빈의 상처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배변실수로 실랑이를 하다 케빈을 밀어 가구에 부딪히는 바람에 팔이 부러진다. 그때 케빈은 아빠 프랭클린에게 실수로 넘어졌다며 거짓말한다. 여기서 에바는 살짝 소름돋는다는 반응이지만, 케빈은 엄마를 곤란에 빠뜨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비극. 그럼에도 사랑을 주지 않는 에바. 둘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프랭클린에게는 나름 다정한 아들이다. 그렇기에 에바가 아무리 프랭클린에게 케빈이 이상하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다 여동생 실리아가 태어나고, 케빈은 더 교묘하게 에바를 괴롭힌다. 케빈은 청소년쯤 되어 몸이 커졌는데도 아주 작은 티셔츠를 입는다. 아마 에바가 어릴 때 사 주고 입혀 줬던 옷 같다. 제대로 된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음에 따라 어떤 것에 집착하는 모양새를 보인다. 이를테면 티셔츠나, 아팠을 때 엄마가 읽어준 책 <로빈훗> 같은 거.


에바는 티가 나게 실리아를 사랑한다. 케빈은 안아주지 않았지만 실리아는 계속 안고 다닌다. 안 그래도 엄마가 사랑해주지도 않는데, 대놓고 차별까지 받는다. 그걸 본 케빈의 심사는 더 꼬였을 터, 실리아가 키우던 기니피그를 죽게 하고 실리아의 눈을 멀게 한다. 영화에서 명확히 케빈의 짓이라고 표현하지 않지만 정황상 그렇다. 실리아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 에바의 행동에 케빈은 더 약이 오른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케빈이 눈알과 비슷하게 생긴 리치를 깨무는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케빈에 관한 의견이 좁아지지 않자 프랭클린과 이혼할 상황에 처한 에바. 프랭클린이 자기는 실리아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는 걸 케빈이 듣는다. 우리의 케빈은 안타깝게도 너무 똑똑하다. 똑똑해서 민감하고 예민하다. 16살이 되면 부모가 이혼할 거라는 것도, 아빠마저 자기를 버렸다는 것도 다 눈치챈다.


화살을 좋아하는 케빈에게 프랭클린은 진짜 화살을 사준다. 그리고 16살 생일 직전, 여동생과 아빠를 활로 쏴 죽이고 학교로 가 강당 문을 자물쇠로 잠군다. 그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캐빈의 화살에 맞아 죽은 아이들이 들것에 실려 나오고, 케빈은 현장에 온 에바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재판 후 에바의 삶은 완전히 몰락했다. 큰 집에서 아주 작은 집으로, 그마저도 희생자들의 가족이 붉은 페인트칠을 해대서 에바는 매일같이 페인트를 지운다. 잘나가던 여행작가에서 이제 작은 여행사 직원으로 일한다. 그리고 2년 후, 소년교도소에서 성인교도소로 이감하게 될 케빈을 만나러 간다.


에바는 묻는다. 왜 그랬냐고. 케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모르겠다"고 답한다. 케빈은 아마 에바가 먼저 물어주기를 간절히 바랐을 거다. 에바는 케빈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케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케빈은 에바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 때가지 수없이 많은 방법을 시도했으나 에바는 케빈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면 그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안 되니까 살인을 저지른다. 케빈의 학살에서 오직 에바만이 살아남았. 누구를 위한 학살이었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사회가 프레임화한 '모성애'라는 개념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많다. 케빈이 어릴 때부터 정서적으로 꾸준히 학대받아왔다고 생각한다. 에바는 널 낳지 말았어야 했다, 널 낳기 전이 훨씬 행복하다, 지금은 불행하다 등으로 언어적 폭력을 행했고 케빈은 사랑이 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 사랑에 방해가 되는 대상들을 없애고, 체육관 학살 후 체포되었을 때도 '이래도 나를 안 봐줄 거야?'라는 식의 눈빛을 보낸다.


마침내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처음으로 "왜 그랬냐"고 묻는 에바. 이제서야 케빈은 아이처럼 보인다. 에바는 케빈을 안아주고, 케빈도 순순히 에바에게 안긴다. 케빈이 간절히 기다려온 질문이었다.


*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불행. 프랭클린의 잘못도 적지 않다.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에바는 케빈을 키우면서 계속 상처를 준다. 똑똑한 케빈은 엄마가 자기를 안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비참하다. 착한 행동을 해서 관심을 받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케빈처럼 이상한 짓들을 하면서 관심을 끄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우리 사회에는 "왜 그랬냐"고 진심으로 물어보아야 할 아이들이 많다.


케빈의 행동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이해해도 되겠으나 그 이전에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결핍자의 몸부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케빈을 사이코패스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한다.

영화의 원제는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이다.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 아직도 엄마가 사준 어릴적 티셔츠를 입는,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케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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