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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Apr 30. 2021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1995

스포가 있습니다.


*


2013년쯤인가. 처음으로 알콜중독 상담을 받을 때 상담선생님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보라고 했다. 남의 의도를 함부로 예단하면 안 되지만, 선생님의 의도는 술에 절여진 주인공 벤이 어떻게 처참히 무너지는지를 보고 충격을 좀 받아 봐라, 했던 게 아닐까 한다. 


하지만 진정한 술쟁이는 남이 술 마시는 장면만 봐도 술이 땡긴다. 어느 영화든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술을 마시고 싶다.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이름난 알콜중독자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들을 읽을 때면 그렇게 술 생각이 날 수가 없다. 미국의 하위 노동자 소설을 썼던 찰스 부코스키는 또 어떤가. 그냥 술을 때려넣는 장면들을 볼 때마다 나도 그렇게 술을 때려붓고 싶었다. 우리나라 소설가로는 권여선 작가가 있다. 권여선 작가의 책을 읽으면 미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2015년쯤 봉사하는 마음으로 상담을 해주신 선생님과 함께 다시 상담치료를 시작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더 많은 이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고 싶으신 분이었다. 그런 성스러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너무 훌륭한 분이셨고, 상담치료를 하는 동안 술을 조금 줄였다. 그때는 알콜중독보다는 우울증 상담에 초점을 맞추었다. 알콜은 우울증의 좋은 양분이다.


그 모든 것에도 굴하지 않고 나는 다시 술을 많이 마셨다. 술을 마셔야 살아있는 것 같았다. 주종도 바꿔보고 술을 마시기 위한 온갖 핑계거리를 만들었다. 운동을 열심히 했으니까 한잔, 일을 마무리했으니까 한잔, 비오니까 한잔, 눈오니까 한잔. 오늘도 밖에 비가 내린다. 나는 언제나 파블로프의 개처럼 술을 마셨다.


작년 여름, 다시 상담치료와 함께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술을 줄여나가다가 또 실패. 그럴 줄 알았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 물론 이번에도 알콜중독이 메인은 아니다. 


대학생 때쯤, 첫 공황발작이 왔을 무렵 A.M.홈스의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를 읽었다. 처음으로 공황발작을 경험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그 책이 내 인생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가끔 공황이 지나가면 그 책이 생각나곤 한다. 아무튼, 절대로 술을 끊지 않고 중독에서만 벗어나기 위해서 애쓰는 중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LA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는 벤은 심각한 알콜중독자다. 회사에서도 잘리고, 아내와도 이혼하고, 양육권도 갖지 못한다. 알콜중독이어서 문제가 생겼는지 문제가 생겨서 알콜중독이 되었는지 영화에서 뚜렷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벤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세간이며 집이며 다 처분한 뒤, 남은 돈을 들고 라스베가스로 간다. 술을 진탕 마시기 위해서 차도 판다. 이렇게 술에 진심이라니. 끊임없이 술을 마시는 장면은 알콜중독자인 내가 봐도 고개를 내젓게 만든다(아, 상담선생님의 의도가 이런 거였나).


벤은 돈을 주고 창녀 세라를 만나 그냥 옆에 둔다. 세라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니 당황스럽다. 세라를 옆에 두고 술만 마시는 벤. 그들의 관계는 계속 그렇게 흘러간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도, 창녀 생활을 그만 두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곁에서 서로를 지켜본다. 이 지독히도 외로운 인간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벤에게 내일이 없듯 세라에게도 내일은 없다.


사랑이 깊어지면 상처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서로를 터치하지 않는 선에서 함께 살기로 한 벤과 세라에게도 사랑으로 인한 갈등이 생긴다. 벤은 세라에게 보란듯이 다른 여자를 부른다. 사랑에 빠지면 내일을 생각해야 하고, 살고 싶어지고, 그러면 술을 끊어야 한다. 가족도, 의사도 포기한 벤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바꾸는 대신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도록, 그래서 먼저 떠나도록 상처를 준다. 회피형 인간이란 어찌 이리 전형적인지.


세라도 벤을 사랑하게 되면서 내일을 생각하게 되고, 살고 싶어지고, 벤이 술을 끊게 만들고 싶다. 둘의 동거 조건은 술에 관해서는 함구하는 것이었다. 벤이 술을 끊게 한다는 건 둘의 관계를 끝내는 것과 같다. 딜레마다. 벤이 재활해서 함께 잘 살고 싶은데, 벤이 재활하게 하려면 벤과 헤어져야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 술을 준다. 정확히는 술을 담는 위스키병이다. 언제 어디서든 마시라는 건지 어쩌라는 건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벤을 사랑한다고 하면 너무 과대포장인 것 같다. 그의 고독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는 게 술뿐이어서인지, 술을 마시게끔 해야 헤어지지 않을 수 있어서인지.


알콜중독의 말로는 죽음이다. 벤 역시 죽음을 앞둔다. 그동안 육체적 관계가 전혀 없던 둘이었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벤은 세라에게 관계를 요구한다. 요구라고 하면 좀 이상하긴 하다. 그리고 허무한 표정으로 허무하게 죽는다. 세라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지켜본다.


*


사랑하게 되면 욕심이 생긴다. 바꾸고 싶고, 맞추고 싶어진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나에게 술을 끊으라고 말했던 애인은 한 명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술을 즐기지 않던 사람들도 나와 만나면 술 문제를 일으켰다. 아마 내 문제일 거다.


외롭고 결핍된 인간들은 서로를 귀신같이 알아본다. 벤과 세라도 그럴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건강했다면 벤은 세라와 함께할 새로운 내일을 그리기 위해 재활을 했을 테고, 세라도 다른 일을 알아보았을 터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이걸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의문스럽다.


아직도 이 영화를 왜 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술을 끊지 못했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OST가 좋다. 라스베가스를 배경으로 해서인지 영상미도 좋다. 너무 심약한 상태에서는 보지 않는 것을 권한다. 나도 마음이 좀 더 건강해지면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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