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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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아름답다는 이유로 눈물이 나는 경험을 그다지 많이 한 것 같지는 않다. 대개는 슬프기 때문에 눈물이 난다. 어떤 장면들은 제발 울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는 그냥 울어준다. 사실 아주 자그마한 감동 코드에도 나는 잘 운다.
내일모레면 우리 외할머니 기일이다.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그렇게나 많이 울었다. 생전에 요양원에도 한번 찾아간 적 없는 매정한 외손녀였는데,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눈물이 난 건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라든지 할머니의 따뜻함을 기억해서라든지 그런 종류는 아닐지도 모른다. 난 할머니의 따뜻함이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아주 철저히 아들과 손자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이라는 거다.
할머니는 무척이나 재주 많은 사람이었다. 가족들의 옷을 지어 입히고, 물김치 하나를 담아도 양배추인지 뭔지를 넣어 분홍빛으로 곱게 물들였다. 매년 명절마다 한과를 산더미처럼 만들고 직접 두부며 도토리묵 같은 걸 쑤었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춰서 무슨 마을 대회 같은 데서 상도 받았단다.
할아버지는 그 재주많은 할머니가 아무것도 못하고 일만 하게 했다. 자식들 앞에서 할머니를 모욕하고 멸시하며, 바람난 여자의 밥상을 차리게 했다. 사과도 한 마디 못 듣고 할머니는 가셨다. 제대로 된 영정사진도 없었다. 영정사진 대신 할머니의 초상화 같은, 사진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이상한 게 걸렸다. 내가 그렇게나 울었던 건 여자로서 할머니의 삶이 너무 거지같아서이기도 했다.
마리안느는 거친 풍랑을 헤치고 브르타뉴의 한 섬으로 간다. 풍랑 때문에 짐 하나가 바다에 빠지는데, 마리안느는 바다에 뛰어들어 짐을 건진다. 마리안느가 해야 할 일은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 초상화를 그리는 데 다른 화가들이 다 실패했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산책 친구로 위장하고 산책에서 본 엘로이즈의 모습을 조금씩 그려나가야만 한다.
두 사람은 산책을 하면서 이미 친구가 되었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흘긋흘긋 보며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겨우 초상화를 완성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초상화를 보여준다. 마리안느가 저택에 간 첫날, 하녀 소피는 엘로이즈가 수녀원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고, 언니가 추락사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사실 자살일 거라고, 떨어질 때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엘로이즈는 언니의 죽음으로 언니 대신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인 거다. 영화의 배경인 19세기에는 결혼할 사람에게 초상화를 보내는 관습이 있었다. 선 볼 때 사진부터 교환하는 그런 거겠다. 다른 점은 이미 결혼을 한다고 상정했다는 것.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그림이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리안느도 그렇다며 그림을 망쳐버린다. 백작부인에게는 다시 그리겠다고 한다. 백작부인은 자기가 외출하는 며칠 동안 완성해놓으라고 한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모델이 되겠다며, 직접 포즈를 잡고 앉는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매무새를 다듬어준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쉼없이 바라보는 동안 엘로이즈도 마리안느를 정확하게 응시한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뭘 보겠어요?"라는 물음. 지금까지 여성의 존재가 객체화되어 있었다면, 이 부분에서는 시선의 방향을 전복한다.
이 영화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의 2시간짜리 우화이기도 하다. 하데스는 죽은 에우리디케를 살리는 조건으로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건다. 하지만 태양을 본 순간 기쁨을 나누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에우리디케는 산산조각이 난다. 친구가 된 엘로이즈와 마리안느, 소피는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읽으며 왜 고개를 돌렸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소피는 끔찍한 이야기라고, 마리안느는 '시인의 선택'을 한 거라고 한다. 엘로이즈는 다르게 해석한다. 에우리디케가 부른 게 아니었겠냐고.
이들이 캠프파이어에 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마을의 여자들과 불가를 빙글빙글 돌며 노래하는 모습. 엘로이즈는 그것들을 보며 서 있다. 치마에 불이 붙은지도 모른 채.
결국 초상화는 완성된다. 그 사이 이들의 사랑도 커진다. 책 38페이지에 그려넣은 마리안느의 자화상. 수녀원에서 지내느라 아무것도 모르는 엘로이즈에게 들려준 비발디의 <사계>. 후회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기억하기로 하고 마리안느는 저택을 떠난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마리안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마리안느에게 돌아보라고 말한다. 돌아보는 마리안느의 시선에 흰 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가 초상화처럼 서 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이름으로 작품 전시를 하게 된 마리안느는 전시회에서 다른 이가 그린 엘로이즈를 본다. 엘로이즈의 손이 가리키고 있는 페이지는 마리안느의 초상화를 그린 바로 그 페이지였다. 그리고 언젠가, 음악회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오자 북받쳐 울고있는 엘로이즈를 본다.
영화는 처음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마리안느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시작한다. 학생은 마리안느가 그린 그림의 제목을 묻는다. 마리안느는 대답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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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영화라고 하기보다는 여성에 관한, 여성의 영화라고 보고 싶다. 피사체로 존재했던 시선이 전복되고, 남성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하던 여성이 주체적으로 '나도 당신을 보고 있다'고 말하는 영화. 영화 <캐롤>에서 마지막에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도 떠오른다.
사랑의 시작은 어디부터일까. 아마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는 순간이 아닐까.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서로를 정확하게 응시하는 것이 사랑은 아닐까.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고 싶은 마음.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에 나는 충청도의 어느 절에서 엄청나게 예쁜 꽃을 보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만개했겠다. 영화가 끝나고,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일이냐고 엉엉 울었다. 어쨌거나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