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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Jul 27. 2021

[넷플릭스 영화] 말레나

시선이라는 폭력

* 스포가 있습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시선의 폭력을 한번 언급한 적이 있다. 보여지는 자가 보는 자를 정확히 응시함으로써 시선의 방향을 전복해버리는, 거기서 오는 쾌감이 있었다.


언젠가 동남아 어딘가에 여행갔을 때, 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베트남 남자들은 골목에 앉아 해바라기씨를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까먹고 있었다. 날씨는 무척 덥고 습했고, 남자들이 앉아있던 자리에 겨우 그늘이 질 뿐 거리는 환했다. 나는 내가 걸어가는 한걸음 한걸음마다 해바라기씨를 까먹던 남자들의 하얀 눈동자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낯선 이국 여자를 호기심어리게 관찰하는 눈빛. 나는 그들에게 대상화된 존재였다.


출처: 네이버 영화


<시네마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았다.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촬영상과 음악상을 거머쥔 영화다. 물론 영상과 음악은 아름답다. 카메라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탈리아 시골마을 풍경을 담아낸다. 거기에 엔니오 모리꼬네의 경쾌한 음악이 겹치면서 약간은 코미디 같은 느낌도 든다. 이상하게도 넷플릭스에는 이 영화가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다.


영화는 주인공 레나토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친구들 사이에서 아직 반바지를 입는 소년, 친구들과 성기의 크기를 재면서 놀림받는 소년. 소년은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하지만, 친구들은 그를 끼워주지 않는다. 친구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말레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성적인 농담을 하는 것뿐이다. 겨우 친구들 틈에 낀 레나토. 집에서 나오는 말레나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말레나는 어떤 사람이냐. 말레나는 그냥 예쁜 여자다. '끝내주는 엉덩이'를 가진 여자, 온갖 추문에 휩싸이는 여자. 그러나 밤마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의 사진을 품에 안고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자. 성녀와 창녀라는 이분법적 클리셰를 너무도 충실히 수행하는 여자.


말레나가 길을 걸어가면 남자들은 모두 다 하던 일을 멈추고 말레나를 뚫어지게 응시한다. 그렇게 쳐다보기라도 하면 말레나의 나체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욕망에 사로잡힌 눈빛으로. 여자들은 말레나를 아니꼬와한다. 아니꼬운 것 이상이다. 자기 남편들이 말레나를 보고 침을 흘리고 있으니, 원망과 증오와 분노의 대상이다. 그렇기에 말레나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말레나는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므로 그들이 어떤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다 안다.


레나토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이 되면 말레나를 실컷 욕망할 수 있을 테니까. 아직 긴바지가 허락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바지를 수선해서 입으려고 하고, 이발소에서도 어린이용 간이의자가 아닌 정식 의자에 앉은 신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에 레나토는 아직 애다. 아버지의 긴바지를 수선한 걸 알게 되자 애를 개패듯 팬다. 이탈리아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제제가 두드려맞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레나토는 길거리에서 말레나를 보는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다 음침하고 관음적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집에 난 작은 구멍으로 그녀의 삶을 훔쳐보고, 그녀의 속옷을 훔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군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사람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바뀐다. 젊은 중사 한 명이 말레나의 집에 방문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말레나의 집 근처를 서성이던 치과의사와 중사가 싸움이 나는 바람에 간통죄로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말레나는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변호사 덕분에 소송에서는 승소하지만 문제가 있다. 돈이 부족한 것. 그리고 말레나는 변호사에게 강간당한다.


남편의 전사 이후 생활이 더욱 빈궁해진 말레나는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하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대신 그녀와 한번 자보려는 남자들 뿐이다. 말레나에게 빵을 주면서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는 남자는 말레나를 인간적으로 돕고 싶은 게 아니라 창녀에게 화대를 준 듯이, 그녀가 자신이 준 빵을 뜯어먹은 것이 말레나를 만질 권리라도 되는 양 행동한다.


마을에 공습경보가 울리고 건물이 폭격된다. 그때 말레나의 아버지도 죽는다. 말레나의 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리는 라틴어 선생인데, 레나토의 친구들은 말레나의 아버지에게 '따님과 한번 자도 되나요?'와 같은 모욕적인 질문을 하고, 라틴어 선생은 귀가 잘 안 들리니 그러라고 한다. 그걸 좋다고 깔깔거린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말레나는 결국 창녀가 되기로 한다. 이러나 저러나 사람들의 눈에 창녀인 건 마찬가지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붉게 염색한 뒤 거리를 걷는다. 평소 같았으면 목적지까지 빠르게 걸어갔지만 남자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문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라이터들. 이탈리아에서는 불을 붙여주는 게 동의를 뜻한다고 한다.


창녀가 된 말레나는 마을로 들어온 나치 장교들과도 어울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애국심이 있을 것인가, 마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을 것인가. 그냥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인 것이다. 돈을 줄 사람이면 나치라도 무관했던 것. 레나토는 말레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기절한다. 레나토의 엄마와 신부는 악귀가 들었다며 구마의식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여자 때문'이라며 레나로를 창녀에게 데려간다.


전쟁이 끝나고 마을에는 나치 대신 미군이 들어온다. 그러자 마을 여자들은 '나치와 어울렸다'는 이유로 말레나를 끌어내 집단 린치를 가하고, 머리카락을 잘라버린다. 옷이 거의 벗겨진 상태로 피범벅이 되어 울고 있는 말레나를 사람들은 지켜보기만 한다. 그 누구도 돕지 않는다. 그렇게 말레나에게 찐득한 눈빛을 보내던 그 사람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내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한 사람들이. 레나토도 마찬가지다.


말레나는 메시나로 가는 기차를 타고 떠난다. 모두가 창가에서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지만, 말레나만은 얼굴을 가린 채 침묵한다. 시간이 지나 죽은 줄 알았던 말레나의 남편 니노가 돌아온다. 사람들은 니노를 비웃는다. 네 아내가 창녀라고. 빨갱이 아내를 둔 전쟁영웅 납셨다고. 니노는 집도 빼앗긴다. 아무도 니노를 돕지 않는다.


레나토는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니노에게 편지를 보낸다. 말레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며 메시나로 가는 기차를 탔다고. 니노도 아마 말레나를 찾아 떠난 듯하다.


그리고 얼마 뒤, 말레나와 니노는 마을로 돌아온다. 그들을 보자 사람들은 얼음이 된다. 정적만이 흐르는 광장에서 누군가는 말레나의 눈밑 주름을 말하고, 살이 쪘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부는 개의치 않는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말레나가 시장에 가자 사람들은 말레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호칭도 '부인'이다. 옷에 관심을 보이자 옷을 그냥 주기도 하고, 뭐든 하나라도 더 주려고 애를 쓴다. 이제 자신들의 물화된 대상이 아닌, 인간 말레나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말레나는 그들을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본 조르노."


레나토는 여전히 말레나를 따라다닌다. 말레나가 토마토를 길에 떨어뜨리자 쏜살같이 달려가 그녀를 도와준다. 처음이다. 그림자처럼 있던 레나토가 처음으로 그녀 앞에 선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한다. "행운을 빌어요."


*


무솔리니 파시즘의 폭력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 영화 전체가 파시즘에 관한 알레고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보는 내내 이렇게 불편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불편했다. 남자들에게도, 여자들에게도 말레나는 사람이 아니라 성적도구에 가까웠다. 그녀를 평가하고, 음해하고, 시기하고, 욕망할 뿐이다. 그녀가 배가 고픈지,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서 외로운지, 남편과 아버지가 죽고 나서 힘들지 않은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간에 아이들 몇명이 개미를 돋보기로 태워 죽이면서, "죄송합니다, 주님!" 하고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말레나는 마을 사람 전체가 돋보기를 들여다 대고 장난으로 태워버리는 개미였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자신의 죄는 까맣게 잊은 채, "안녕하세요, 부인." 하고 인사하는 행위는 말레나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것보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함에 가깝다.


말레나를 관음하고 따라다니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기껏해야 속옷 훔치고 엿보는 정도밖에 못했던 어린 소년 레나토는 이제 말레나의 행운을 빌어 줄 정도로 성장했다. 레나토는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했을지 몰라도, 말레나의 입장에서는 지독한 스토커일 뿐이다. '그렇게 소년은 남자가 되었다'와 같은 말 따위는 집어치우자. 어쨌든 이 영화는 첫사랑 드라마도, 포르노도, 코미디도 아닌 '폭력'에 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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