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와의 만남은 피로 시작되었다. 농구 코트에 앉아 신음을 내던 그 아이는 고통 때문에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무릎이 까졌고 심하게 다리가 다친 것처럼 보였다. 다리에 손을 대기만 해도 신음을 냈기에 서둘러 친구 몇 명을 불러 그 아이를 양호실로 옮겼다. 그 아이를 옮기는 동안 철분 냄새가 진동했다. 피냄새에 민감했던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티를 낼 순 없었다.
며칠 후 그 아이는 내게 다가와 고맙다고 얘기했다. 계단을 무리하게 3단 뛰기를 하다가 넘어져 다친 것이었다. 전혀 그런 행동을 할 것으로 보이지 않았던 아이였다. 검은 머리와 단정한 옷깃, 그리고 햇빛에 반짝이는 마노 단추는 그 아이의 피부와 잘 어울렸다. 그림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새초롬한 아이였다. 모범생의 전형처럼 보였던 그 아이는 속에서 용암을 품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뜨거운 장난기와 독특한 발상. 억눌려 있었던 고등학생 신분에 그 아이는 자유를 갈망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그 아이와 친해졌다. 같은 학년이었다. 다만 반은 달랐기에 자주 마주치지는 못했다. 그 아이는 키가 컸다. 눈대중으로 봐도 두 뼘 이상은 큰 키였다. 잘생긴 외모로 그 아이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많았다. 내가 그 아이와 얘기하는 것을 보고 여자사람친구가 내게 그 아이를 소개해달라는 일도 있었으니 아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그 친구를 좋아했을 것이다.
해사한 웃음에 구김 없는 미소를 아낌없이 퍼부을 줄 아는 친구였다. 인기도 많았고 공부도 잘했던 아이였다. 길쭉한 팔다리로 농구 코트에서 날아다니는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의 모습을 눈으로 담았다. 누구보다도 빛나는 아이였다. 그렇게 1학년이 끝나고 2학년이 되어서 나는 그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 뒷자석에 앉아 어색한 웃음을 연신 짓던 나를 ‘툭’ 치면서 웃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업 스트레스는 늘었지만 그 친구를 만나면서 스트레스가 상쇄되었다. 햇살 같은 친구였다.
급속도로 가까워진 우리는 단짝이었다. 어떻게 이 친구를 모르고 살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잘 맞았다. 취향도 취미도 보는 눈도 비슷했다. 그 아이는 내 작은 키를 매번 놀렸다. 화를 내며 껑충 뛰었지만 아쉽게도 그 친구의 머리를 때리지는 못했다.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던 녀석은 내가 머리 끝까지 분노할 때마다 나를 와락 껴안았다. 미안하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제풀에 화를 숙였다. 찰랑거리는 머리와 좋은 향기가 그 친구에게서 났다. 매번 속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웃음을 보면 화를 낼 수 없었다.
12월의 어느 날. 항상 내 뒤에 앉아 있던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 녀석의 이사 소식을 무겁게 전했다. 갑작스러운 이사. 그리고 소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간 줄 알았다면 먼저 내게 얘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 선생님께 물었지만 선생님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교무실로 나를 부른 선생님은 진실을 들려주었다. 녀석이 가출했다는 사실. 가족들도 그 친구의 행방을 몰라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겉으로는 이사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가출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사라졌는가? 이미 녀석의 이사 소식은 반 전체의 궁금증이었다.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던 녀석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증발은 혼돈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사라진 것이라는 설명도 있었고, 집안이 사이비를 믿어서 가족 전체가 증발한 것이라는 루머도 돌았다. 그러나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그 녀석 집도 알고 있었던 나는 학교가 끝나자 마자 집으로 갔다. 그러나 집에 가봐도 내가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가족들도 당황한 눈치였다. 녀석의 어머니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번호를 알려주었다. 혹시 녀석이 연락이라도 하면 본인에게 알려달라는 메모. 나는 물끄러미 번호를 내려다보며 맥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연락도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철저한 소실이었다. 외계인에게 납치된 것처럼 흔적을 지우고 그 녀석은 사라진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처음에는 화만 났지만 나중에는 걱정이 되었다. 설마 납치라도 당한 것일까?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녀석의 부모님은 걱정이 된 나머지 실종신고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소문이 빠르게 나는 지역이기에 자칫 잘못했다가 인식 자체가 나쁘게 박히면 안 되기에, 녀석의 부모님은 조용히 탐정을 고용했다고 한다.
그랬다. 녀석은 집이 불편하다고 했다. 주위의 시선을 끊임없이 신경 쓰는 집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바랬다. 나는 괜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녀석의 가출 이후, 그 녀석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그 녀석은 사라진 채 답장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종적을 감췄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흘렀고 고3인 나는 시험에 집중해야 했다. 수능을 치르고, 논술을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하고, 신입생 OT를 겪으며 차츰 나는 녀석의 모습을 잊을 수 있었다. 양말을 신으면서 그런 녀석이 있었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정신없는 1학년 캠퍼스 라이프를 만끽했다.
그런 내게 갑작스러운 연락이 온 것은 12월이었다. 그 날은 과외를 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서던 길이었다. 평년보다 더 추운 계절이었다. 입김이 새하얗게 나오는 추위. 나는 그날 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개념을 되뇌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스마트폰에서 나는 문자를 보게 되었다. ‘잘 있니?’ 3글자였지만 나는 누가 말 한지 알 수 있었다. 녀석이었다.
‘보고 싶다’ 녀석의 몇 글자 되지 않은 내용에 내 심장은 크게 흔들렸다. 그 아이는 한국에서 벗어나 일본으로 향한 것이었다. 몇 푼 되지 않은 돈을 모아 아는 지인이 살고 있는 일본으로 과감하게 도망친 것이었다. ‘도쿄에 있어’ 나는 즉각 물었다. ‘나 가도 되니?’그 아이는 ‘보자’라는 짧은 말을 남겼다. 주소와 날짜를 잡고 나는 도쿄로 가는 표를 끊었다. 갑작스러운 일본 여행에 부모님과 지인들은 의아해했다. 무슨 정신인지 몰랐지만 그 아이를 보고 싶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에노 공원은 추웠다. 연신 손을 비비며 나는 눈이 오는 공원 벤치에서 그 아이를 기다렸다. 도쿄는 그렇게 춥지 않다는 말을 믿고 얇게 입고 갔지만 그 이야기는 틀린 이야기였다. 나는 추위에 덜덜 떨며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감쌌다.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공원은 조용했다. 본래 벚꽃 공원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눈이 내리는 우에노 공원은 그 나름의 멋이 있었다. 하지만 추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나는 어서 빨리 그 아이가 오길 기다렸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그 아이가 보였다. 빨간색 목도리는 녀석의 키만큼 길었다. 성큼성큼 내게 다가온 그 아이는 목도리를 내게 벗어주었다. 오랜 시간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아이는 여전히 멋있었다. 다만 일을 고되게 한 모양인지 다크 서클이 짙었다. 새하얀 눈의 향기가 그 아이에게서 났다. 많은 것을 묻고 싶었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놀러 왔으니 자신이 대접하겠다고 말한 그 아이는 도쿄 곳곳을 내게 보여주었다. 도쿄 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도쿄 시내를 보여주고,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도 데려갔다. 교차로 근처에 있던 킷사텐은 맛집이었다. 파인애플이 들어간 파르페는 독특한 맛이었다. 여전하다며 그 아이는 나를 보며 웃었다. 독특한 맛을 좋아하는 걸 그 아이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저녁 주점 알바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와 그 아이는 도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일주일 내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일본어를 못했던 나는 그 아이의 안내에 의존해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새하얀 도쿄는 네온과 사람들로 반짝이는 곳이었다. 산란하는 눈의 사이사이로 그 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다소 야위고 피곤해 보였지만 여전한 활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돌아가기 하루 전, 나는 비로소 그 아이에게 가출의 진상을 들을 수 있었다. 아사히를 들이켜며 그 아이는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 아이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미성년자였던 그 아이보다 5살 연상의 애인. 고등학교 졸업하고 같이 살자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깊은 사이였다고 한다. 그 아이는 연상의 애인에게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애인만 있으면 모든 걸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아이는 어느 날 애인이 자신을 버리고 일본으로 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앞 뒤 보지 않고 일본으로 날아간 그 아이는 애인이 딴 놈과 자고 있었던 것을 봤다고 한다.
“그 길로 나는 길거리로 나왔어” 애인이 그를 붙잡았지만 그 아이는 듣지도 않고 길거리로 나왔다고 한다. 일본의 밤거리. 연상의 애인만 생각해 재지도 않고 일본으로 향한 그 아이의 마음이 짐작되지 않았다. 많은 생각을 하다가 그 아이는 일본에 눌러 앉기로 결정을 했다고 한다. 집에도 일본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아예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 이후 여러 복잡한 일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생맥주를 연신 들이켜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뒷 사정을 캐묻진 않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바라봤다. “내가 게이라는 건 별로 개의치 않아?” 나는 아사히를 마시며 그 아이를 다시 쳐다봤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랐다. 몰랐다. 그 아이가 연상의 게이 애인과 도망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기에, 그리고 그 아이의 성향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에 나는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냥 웃었다. 그 아이도 그냥 웃었다. 술잔은 점점 쌓였다.
잠시 화장실을 갔다가 오니 그 아이가 자리에 없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그 아이는 전화기를 붙잡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누구인지 몰랐지만 심각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걸 봐서 애인인 것처럼 보였다. 손가락에 있던 반지로 그가 누군가와 사귀고 있었다는 건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먼 발치에서 그 아이를 바라보던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안 본 사이에 그 아이와 내가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와 그 아이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벽이 생겼다는 것을 체감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일본의 겨울은 지독하게도 추웠다. 대규모 한파라는 라디오 뉴스가 주점에서 흘러나왔다.
다시 놀러 오라는 그 친구의 환한 웃음을 보면서 나는 환하게 대답했다. 시간 되면 놀러 갈게. 그 친구는 알겠다는 듯 사람 홀리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유일하게 너만 모든 걸 알고 있어” 실제로 그 친구는 여러 사람들에게 만나자는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다들 거절했지만 나만 유일하게 찾아간 모양이었다. 모든 걸 이야기할 용기가 생긴 건 그 때문이었다. 솔직한 자기 모습을 내게 오픈한 것은 그 친구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영광이라는 말과 함께 너스레를 떨며 나는 여행 가방을 움켜 쥐었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올 때도 혼자였다.
그 이후로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건 과제 폭탄이었다. 정신 없이 학업과 알바, 그리고 과외를 전전하다 보니 일본에서의 기억은 흐릿해 졌다.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가끔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 그 친구의 기억을 되새기곤 했다. 그 친구도 가끔씩 안부를 묻긴 했지만 나는 거기에 답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거리만큼, 나도 그 친구와 멀어졌다.
오랜만에 그 친구의 소식을 접한 것은 얼마 전이었다. 한 통의 메시지. 무심코 메시지를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본인 상에 대한 메시지였다. 친구의 죽음. 나는 되살아나는 기억을 애써 억눌렀다. 일본에서 그 친구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애인을 사귀고 차이는 것의 연속. 그 친구는 일본에서 온전히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나치게 자신의 삶에 솔직한 것이었을까? 친구의 영정사진은 고등학교 때 찍은 사진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던 고등학생의 그 아이.
그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보았지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그 아이를 다시 생각했더라면 달라졌을까? 밥을 먹고 가라는 어머님의 말에 나는 자리에 앉아 밥을 떴다. 선짓국이었다. 피 냄새가 확 올라왔다.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평생 먹지 않던 선짓국을 한 술 펐다. 역한 냄새를 참으며 한 숟갈씩 선짓국을 먹었다. 철분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퍼졌다. 농구 코트에서 만난 그 아이와의 만남이 생각났다. 고개를 숙이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짓국의 향을 끝까지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