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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로 본 ‘이탈리안 브레인랏’ 밈

'무의미의 의미'를 구현하는 밈의 철학

by 명지바람

틱톡과 릴스를 장악한 밈이 등장했다. ‘이탈리안 브레인랏(Italian Brainrot)’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한 이 밈(meme)은 올해 3월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캐릭터들의 숫자를 늘리며 알고리즘을 장악했다. 이탈리안 억양을 한 화자가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이야기하고, 기괴한 AI 그림이 결합되면서 이 밈은 증식되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해변 위에 있는, 다리 세 개 달린 ‘트랄랄레로 트랄랄라’를 시작으로 브레인랏 밈은 겉잡을 수 없이 퍼졌다.


이해할 수 없고, 무논리에 가까운 이 밈 앞에서, 많은 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름 힙한 문화나 인기 있는 밈을 조사하는 이들도, 이 브레인랏 밈을 이해하기 어려워 포기하는 이들도 생길 정도로 말이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서사적으로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AI가 무작위하게 생성한 이미지에 알 수 없는 이탈리아 억양의 말이 결합된, 무의미의 총합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독해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 밈을 퍼뜨리고 즐기는 젊은 층들 역시 무의미하다는 차원에서 이 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즐기는 이들도 ‘이해’에 기반해서 이 밈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왜 트랄랄레로 트랄랄라가 봄바르디로 크로코딜로보다 더 센지, 혹은 그 반대인지 이야기하는 것도 무언가 논리적인 정합성을 띈 세계관 속에서 논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도구로 이 밈을 활용할 뿐이다. 철저한 무의미 속에서 의미는 이 밈을 향유하는 이들이 스스로 만드는 형국이다. 브레인랏(Brainrot)이라는 의미대로 ‘뇌 썩음’을 유발하는 이 밈은 모든 것을 우습게 만든다.


거대한 무의미 속에서 무의미 그 자체로 이 밈을 즐기는 이들. 아예 이 밈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며 비난하는 이들까지 이 밈을 둘러싼 논의는 중구난방이다. 혹자는 이 밈을 AI 시대를 상징하는 밈으로 해석한다. 출처가 AI고, 알고리즘의 조합에 의해 무작위로 생성되었기에, 이 밈은 궁극적으로 인간 지성의 한계를 드러내고, 알고리즘의 지배에 종속된 인간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인간은 AI의 홍수, 이미지의 홍수 앞에서 충분히 무력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 밈이 이상하지 않다고 역설하는 이도 있다. SCP 재단과 비슷하다고 말이다. ‘SCP 재단’은 인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탄생한 괴담이다. 4chan에서 시작된 스레드에서 시작된 유저의 상상력은, 거대한 괴담 판타지를 형성하는데 이바지했다. 지금 SCP재단의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굉장히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고, 내적 논리에 따라 다른 존재를 생산한다. 괴담이 괴담을 낳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지금은 거대한 하나의 세계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게임이나 소설, 영화로도 발전하면서 어떤 이는 SCP 재단을 실존하는 단체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이들에 따르면 이탈리안 브레인랏도 밈의 계보를 추적하면, 상상의 기관인 SCP재단을 주축으로 무의미한 설정 놀음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SCP 재단과 이탈리안 브레인랏은 비슷하면서도 대단히 다른 측면이 있다. SCP 재단이 관리하고 있는 초자연현상은 굉장히 디테일한 설정 값이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 SCP 문서를 관리하는 이들은 설정 값을 기반으로 최대한 현실감(다른 말로 핍진성)을 부여하려 한다. 재단의 ‘관리인’들은 무의미한 상상의 산물을 최대한 현실에 부착한 ‘존재’로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브레인랏을 향유하는 이들은 이들 존재의 현실성에 크게 관심이 없다. 어차피 밈이고 장난이고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의 현실성을 강화하는 형식의 헛수고를 하지 않는다.


인간의 상상력에 기반하고, 전통적인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SCP 재단의 밈은 모던(modern)한 상상력의 한계에 제한된 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브크래프트가 탄생한 ‘크툴루 신화’와 비슷한 계열의 밈인 것이다. 인간의 불안과 혼란, 그리고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상징하는 이 밈들은 인간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 인간적인 면을 토대로 만들어진 밈이기에, 분명한 한계(제약)가 존재한다.


반면, 이탈리안 브레인랏은 포스트-모던에 해당하는 밈이다.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형태의, 예측 불허한 형태로 인간에게 다가간다. 따지고 보면 ‘투명드래곤’과 더 흡사한 밈이 이탈리안 브레인랏일 것이다. ‘짱 센 투명 드래곤이 울부짖으면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것처럼, 특정 브레인랏 밈이 등장하면(퉁퉁퉁 사후르) 모든 사건이 정리되는 구조는 대단히 예전에 즐겼던 밈의 구조와 일맥상통한다. 무의미가 일상화된 세계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브레인랏 세계관은 무한하다. 브레인랏의 캐릭터들은 얼마든지 변용되고 합쳐지며, 동시에 다른 존재로 탈피가 가능하다. 무한한 가능성만큼 브레인랏 밈은 새로운 브레인랏의 등장으로 사라지거나 혹은 강화된다.


이는 과거 들뢰즈(Deluze)가 ‘되기(becoming)’ 운동을 통해 존재론적 한계를 탈피하려 했던 것과 비슷하다.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다른 존재가 되기(becoming)를 바란 들뢰즈는 구조적인 한계, 존재론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인 운동으로서 ‘되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을 권했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여성-되기’나 ‘무기물-되기’와 같은 방법으로,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려고 했다. 이탈리안 브레인랏에서 젊은 층들이 스스로 의미를 창출하는 것과 비슷한 행동인 것이다.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고 다른 존재로 바꿀 수 있기에, 비정형적인 브레인랏 밈은 한계가 없다. 그리고 그런 구조적인 틀(SCP 재단과 다르게)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기에 타자로서의 브레인랏 밈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 밈은 단순히 뇌 썩음을 유도하는 것으로 비하될 것이 아니라, 생성과 윤리적 실천을 탐구할 수 있게 만드는 도구인 것이다.


실제로 브레인랏 밈을 분석해보면, 생물과 무기물의 조합체인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브레인랏 밈인 ‘봄바르딜로 크로코딜로’는 전투기에 악어 머리를 결합한 밈이다. 무기물과 유기물이 조합된 형태다. 유기물로서 한정 짓기도, 그렇다고 무기물로 간주하기도 어려운 경계선에 위치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근대의 인간은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이지만, AI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현대에 이런 이미지는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그저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키메라’ 같은 존재지만, 동시에 이는 어떤 가능성을 포함한 밈이다. 창발적인 세계관에서 포스트모던한 세계에 던져진 현대인들(MZ와 알파세대)은 유연한 사고를 하게 된다. 가능성에 어떤 제한을 두지 않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포스트-모던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AI의 힘 덕분에 생명력을 추가로 부여받은 포스트-모던의 세계에서 브레인랏 밈, 더 나아가 앞으로 브레인랏과 같이 태어날 밈들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투사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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