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죽이기 클럽'이 향하는 미래
황동혁 감독은 2024년 말, 프랑스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흘렸다. 그는 '노인 죽이기 클럽'이라는 영화를 계획 중에 있으며, 이 영화가 완성된다면 노인들을 앞으로 피해 다녀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15장 정도의 트리트먼트가 있다고 밝혔으며, 오징어게임만큼 잔인하면서 동시에 우스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힌트도 흘렸다. 정확하게 그의 차기작이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많은 이들이 추측하기로는 세대 갈등에 대한 이야기라고 추측했다. '노인 죽이기'라고 얘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간의 밥그릇 싸움을 그려낸 블랙 코미디라고 어림짐작할 수 있다.
오징어게임 3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차기작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것은, 사실 오징어게임 3의 이야기가 그의 차기작 내용을 많이 가져왔기 때문이다. 억측 아니냐? 그럴 수 있다. 어차피 완성된 대본은 지금의 계획과는 많이 달라질 수 있기에 사실 어디까지나 '뇌피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게임 3을 제작할 당시,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던 '노인 죽이기 클럽'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따왔으리라 짐작하는 이유는 마지막에 벌어진 '오징어 게임' 경기 때문이다.
한 명씩 죽기만 해도 상금을 가져갈 수 있는 게임. 최종 진출자들을 위해 만찬을 준비한 프런트맨은, 친절하게도 마지막 게임의 정체를 알려준다. 실제로 그의 말대로 시즌 3의 마지막 게임인 '고공 오징어 게임'은 각 라운드별로 한 명씩 떨어져 죽기만 해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고, 456억이라는 상금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결국 마지막에 상금을 타가는 우승자는 울기만 한 아기였다. 어머니의 222번을 물려받고, 456억이라는 큰돈까지 받게 된 아이 말이다.
이 게임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아이의 아버지인 '진기명기'가 아이를 들고 성기훈을 협박하는 장면이었다. 자신의 애를 볼모로 잡고, 성기훈을 협박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어떤 기시감 같은 걸 강하게 느꼈다. 그리고 비로소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왜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세대 갈등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이며, 앞으로 찍을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는 것을 말이다.
오징어게임 3은 모든 장면과 대사, 그리고 움직임에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 전력질주를 해왔다. 시스템을 벗어나자고 외쳤지만 결국 실패한 혁명가 성기훈부터, 시스템에 복종해서 그 질서를 묵묵히 따르는 프런트맨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결국 인간은 성기훈과 프런트맨 그 어딘가의 지점에서 흔들리기 마련이다. 오징어게임을 보는 시청자들은 이 진자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된다.
캐릭터와 장면마다 담긴 의미가 무거워질 정도로 감독은 드라마 내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욱여내기 급급했다. 그리고 마지막 게임에서 본 3자 구도의 장면은, 정확하게 자원(456억 원)을 두고 둘러싼 세대 갈등의 지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희망이자 젊은 세대인 아이를 들고, 40대 장년층을 대표하는 성기훈은 이 게임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아이가 그의 구원인 상황에서 아이의 진짜 아빠인 진기명기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456억 원을 차지할 수 있다면 아이도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 노력한 자가 돈을 쟁취할 수 있고, 아이는 그럴 자격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말이다. 왜 내가 456억을 다 가지면 안 되지?
'이대남'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는 진기명기는 그래서 자신의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죽이려는 시도를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를 걱정하고 끝까지 보호하는 것은 생면부지의 실패한 혁명가인 성기훈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을 믿고, 자본주의의 그물망에서 인간은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40대의 스위트한 아저씨가 오히려 희망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20대와 40대는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너무나 명확하게 보이는 세대 간 갈등. 그리고 자원을 둘러싼 이들의 격투는 '이미 한 차례 오징어게임에서 승리해 456억 원을 가진' 기득권 40대와 '가진 것 없이 빚진 몸으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20대 진기명기의 모습인 것이다.
결국 감독은 이 장면의 끝에 성기훈의 죽음을 그려내며 아이를 살리는 선택을 한다. 후대가 자원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40대 장년층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면서 말이다. 20대의 진기명기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고, 자신의 아이를 버리면서까지 돈을 추구하는 인물이기에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기명기는 이 마지막 게임에서 죽어야 하는 인물인 것이다. 반면, 성기훈은 성자처럼, 마치 자신을 희생해서 모든 인간의 죄를 사한 예수처럼 고결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요즘 젊은것들 믿을 수 없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친자식조차도 욕망의 제물로 희생시킬 수 있는 젊은것들에게 미래를 맡길 수 없으니, 더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의탁하는 이 행보가 어떤 이들에게 불쾌하게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독이 성기훈에게 자아를 의탁해 스토리를 끌고 있으니 많은 이들이 오징어게임 3에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마 황동혁 감독의 차기작인 '노인 죽이기 클럽'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극본을 다듬고 이야기를 디벨롭할 순간이 많이 없었으니, 노인 죽이기 클럽의 아이디어를 녹인 오징어게임 3가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전작의 위광 덕분에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감독 입장에서는 이 아이디어를 다시 우려내도 괜찮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나는 다음 그의 작품이 기대가 안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도덕적으로 올바름으로 무장한 우리 40대 장년층'이 미래를 살렸다는 이야기 속에서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게임의 결론에 대해 속 시원하다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끝까지 관철했으니 속은 시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발효' 된 그의 꼰대 소리를 들으며 속이 뒤집힐 수밖에 없다. 제발 그가 정신 차리고 다음 이야기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이길 바라지만, 아마 그런 모습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한 번은 망해봐야 정신 차릴 테니, 다음 작품에서 제대로 망해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새로운 이야기를 펴내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