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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몬트 유리병

by 명지바람

목이 칵 막혔다. 성급하게 알사탕을 삼킨 탓이었다. 다행히 숨은 쉴 수 있었다. 가쁜 숨을 쉬면서 엄마에게 달려가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엄마는 내 말을 당연히 믿지 않았다. 또 어디서 이상한 장난을 치냐고 엉덩이를 때렸다. 억울했지만 내 말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멀쩡하게 숨은 쉬고 있고, 말도 할 수 있는 애가 사탕이 목에 걸렸다고 얘기하니 엄마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빠에게 달려가도 마찬가지였다. 그 날은 추석이었고, 모든 어른들은 고스톱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 켠에 어린 아이가 사탕을 삼켜서 위기에 놓였다고 해도,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결국 마지막 수단은 할머니였다. 노곤하셨는지 한 켠에 이불을 펴놓고 주무시던 할머니는 잠에서 깨자마자 내 사정을 듣고는, 바로 구명조치에 나섰다. 어른을 불렀고 하임리히 법으로 사탕을 빼냈다.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단호하게 나를 단속했다. 울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사탕이 제대로 빠졌는지 아닌지 그것에 집중하라고 얘기했다. 다정했던 할머니가 단호하게 말하는 걸 보고 울음을 그쳤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사탕은 빠져나왔다. 그런 나를 할머니는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잘 참았다고, 꽉 끌어안은 할머니에게서 따뜻한 재스민 향이 났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차가운 델몬트 병을 꺼내 보리차를 따라주었고, 그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혹시나 목에 남아 있을 이물질을 깔끔하게 씻어냈다. 그런 나를 보면서 할머니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참았다고, 그리고 겁먹지 않고 끝까지 침착하게 버틴 게 대견하다고, 손자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칭찬을 했다. 우울하고 억울했던 기분은 사라졌다. 그저 할머니의 따뜻한 손과 칭찬, 그리고 차가운 보리차의 감각만 남았다.


그게 나와 델몬트 병의 첫 만남이자 강렬한 기억이었다. 할머니와의 추억에 강하게 자리잡은 델몬트 병. 언제나 전주 할머니 댁을 찾으면 그 델몬트 병은 언제나 나를 반겼다. 언제부터 그 냉장고에 있었는지 모를 델몬트 병에, 보리차만 항상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매실차가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느 순간 델몬트 병은 매실차가 들어간 유리병이었다.


여름철, 태양도 스스로의 더위를 참지 못해 빨갛게 익어버린 그 날. 나는 전주에서 알게 된 친구와 농구를 했다. 1게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갈증이 찾아왔다. 더 이상 운동을 계속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 나는 코트 밖으로 나갔다. 어지럼증도 있었다. 결국 할머니 집까지 도착했을 때 그 어지러움과 열기에 취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더운 여름 날씨에 노출이 많이 되어 있었기에 약한 탈수증에 빠진 것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목을 축이기 위해 나는 물을 찾았다.


마침 델몬트 병에 든 매실차가 있었고, 정신없이 매실차를 마셨다. 시원한 감각이 목을 간지럽혔고, 달콤함과 시큼함이 서로 경쟁하듯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한 통을 순식간에 다 비웠다. 그렇게 많이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냉장고 앞에 반쯤 정신을 놓고 있는 날 본 할머니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거실 바닥에 날 눕혔다. 할머니는 못마땅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채셨는지, 할머니는 내 옆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셨다. 할 말은 많지만 참겠다는 표정과 함께, 할머니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할머니 집에 손님이 찾아올 예정이었는데, 매실차가 다 사라져서 음료가 없어져 곤란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손자가 매실차를 다 먹고 뻗어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던 것. 그러나 어딘가 이상한 손자의 모습에 뭐라할 수 없어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 것이었다. 나중에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기쁜 모습이었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할머니는 정말 재밌는 일을 기억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된 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였다. 이미 당뇨 합병증으로 몸 여러 곳이 망가지고 있었고, 나이가 들면서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내가 고3이 되었을 때는 이미 병실에 계셨다. 집중 치료를 받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여러 친척들이 할머니 병실을 방문하던 시기였다. 나 역시 오랜만에 할머니를 봐서 기쁜 마음과, 동시에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늘 든든하고 사랑이 가득한 손길로 나를 대했던 분이, 지금은 아무 표정 없이 누워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 할머니의 곁에는 여전히 델몬트 병이 있었다. 차를 담은 델몬트 병을 옆에다가 두고, 계속해서 그 병에 든 차를 마시고 계셨다. 정신이 돌아올 때, 델몬트 병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할머니는 마치 10년 전, 건강하셨던 그 모습을 보였다. 아무런 탈이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어떤 문제가 없는 것처럼 기운차게 말이다. 병실을 떠나기 직전까지 할머니는 건강한 모습으로, 집으로 향하는 나를 환하게 웃으며 배웅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고3이 끝나고, 대학 입학을 앞둔 시기였다. 다시 건강을 되찾아 계속 우리 곁에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끝끝내 곁에 계시지는 못했다. 고3이라는 이유로 계속 곁에 있지 못하다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런 기운을 내지 못했었다.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로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었다. 너는 공부해야지, 고3인데. 어른들은 굳이 내려올 필요 없다고 얘기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모든 것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전주 집도 착착 정리되었고, 어린 시절 늘 할머니 곁에 있었던 델몬트 병 역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최근 델몬트가 파산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할머니 곁을 지켰던 델몬트 유리병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묵묵히 한 사람의 일생 동안 그 곁을 지켰던 물건도, 그 사람의 죽음으로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사실이 왠지 서글펐다. 나는 엄마에게 그 병이 어디로 갔을지 물어봤다. ‘글쎄?’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엄마는 트로트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궁금하지 않냐고, 할머니의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생각나지 않냐고 묻자 엄마는 퉁명스럽게 궁금하지 않다고 얘기했다. ‘왜? 할머니가 사랑한 너는 여기에 있잖아’ 대수롭지 않게 엄마는 내게 말했다.


그렇지,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델몬트 병의 행방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결국 물건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중요한 것이지. ‘오렌지 주스 마시고 싶어?’ 상념에 빠져 있던 내 뒤로 엄마는 오렌지 주스 이야기를 했다. 응. 나는 델몬트에서 나온 오렌지 주스를 먹고 싶다고 얘기했다. 비록 유리병에 담긴 주스는 아닐 지라도, 그 주스가 유난히도 마시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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