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마음을 짓밟지 않도록 다스릴 것
날이 따뜻해진 오후 사무실. 아침을 덥혀준 코트는 의자 뒤에 걸고, 메모장에 적어 둔 업무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옆자리 동료들의 잡담은 애써 모른 척하며, 모니터 화면에 놓인 커서에 집중한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머릿속 가득한 잡생각은 떠나지 않는다. 잡생각이라 함은 보통 일종의 기억이며, 감정이다. 한데 이번엔 충동이 함께였다. 모든 것은 순환이다. 기억의 재생이 만들어낸 감정이 또 하나의 강력한 충동을 만들어낸 셈이다.
특정하게는 '연락해 볼까?' 하는 망설임이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나를 던지고 싶은' 충동일 것이다. 구질구질하다. 원래도 알았지만 이 문장을 쓰면서도 알았다. 나는 왜 나를 안전하게 두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가로막힌 경주마는 콧김을 뿜고, 발을 구른다. 이는 곧 대상 없는 분노로 바뀌었다. 시비 거는 거래처도 없는데, 혼자 잔뜩 화가 나서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하루 종일 무시 못할 질문이 떠다닌다. 괜히 주변 사람들, 유튜브 영상에 대고 묻는다. 정작 물어야 할 사람에겐 묻지 못하고. 그래서 질문은 다시 내 차지다.
그 애와 뭘 어쩌고 싶은 걸까?
하지만 나 역시 답하지 못한다.
잠들어 있던 충동이 잠들기 전, 다시 솟구친다. 어쩌지도 못할 거면서. 이성 한 켠에서는 말한다. 너를 좀 지켜. 귓바퀴에 앉은 말들도 재생한다. "넌 상처받는 게 좋아?" 아니, 그럴 리가. 그래도 속에서 날뛰는 미친 경주마를 '쉬이-'하고 달래는 일이 너무 어려운 것을. 어쩌면 이 말을 다스리는 게 내 과제일지도 모른다. 빗장을 열면, 행인을 칠 수도 있고 누군가 만들어놓은 예쁜 꽃밭을 다 짓밟아버릴지 모르니까. 혹은 이제껏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래왔을 수도.
질문은 다시 내 차지다. 물을 수 있는 사람에게 묻자. 나에게. 왜 이러한 말이 생겨났는지. 이 말을 어떻게 하면 다스릴 수 있을지.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