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 아닌 표현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GlILAivMBR4
생각을 던져주는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 배웠다. 이 영상이 내게 던져준 생각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많은 콘텐츠에서 여장남자는 게이나 트랜스젠더로 다뤄졌다. 범죄자 이미지도 도외시할 수 없다. 곱상한 외모의 아이돌이야 팬들에게 칭송받지만. 어딘가 소름 끼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도 '드래그퀸=성 소수자'라고 생각했다. 허나 닷페이스에서 본 영상 하나가 완전히 뒤바꿔놨다.
https://www.youtube.com/watch?v=jmuUsfWPBfY
"화장을 진하게 하고, 속눈썹을 붙였다고 해서,
그게 왜 여자가 되고 싶은 걸로 보이는 건지."
하나의 표현이었다. 자기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 생각해보면, 여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여자다움'을 규정한다. 화장, 치마, 굴곡진 몸매, 긴 머리칼 등을.
반대로 맨얼굴, 편한 트레이닝복, 평평한 몸매, 짧은 머리칼은 남성성을 나타낸다. 그래서 아직 우리 아빠 같은 분들은 에프엑스 엠버를 보면 "쟤는 왜 남자애처럼 하고 다니냐. 레즈비언이냐?" 하고 묻는다. 덕분에 먹지도 않은 설날 떡국이 얹힐 뻔했다. 아직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표현'으로써 성을 넘나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뿌리 깊은 성 관념을 뿌리치지 못한다.
창을 마주 본 자리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고 있는데, 늘 그러하듯 옆 테이블 대화가 쏙쏙 들어왔다. 키도 크고, 콧대고 높은(관용적 표현이 아니다.) 금발머리 여성과 어깨까지 나풀거리는 머리에 분홍색 코트를 입은 여성이 있었다. 자음 모음이 명확히 들리는 말소리는 아니었지만, 금발머리 여성은 유럽 억양을 쓰는 듯했다. 대학가 근처니까, 언어교환을 하겠거니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성이 내 앞을 지나가는데, 충격. 자세히 보니 한국인이었다. 분홍 코트 여성분이 마저 지나가는데 역시 충격. 누가 봐도 남성의 얼굴이었다. 혼돈에 빠졌다.
손님이 많은 집이라 횡설수설 주문하곤 밖에 덜덜 떨며 기다렸다. 마침내 받아 든 타코야키를 호호 불며 나눠 먹는데, 엄청나게 키 큰 사람이 지나갔다. 머리카락도 꼭 키만큼 길었다. 짧은 원피스 아래로 허옇게 마른 다리를 드러내고, 분홍, 보라색의 스카프를 휘감고 있던 사람.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귓속말을 해주었다. "저 사람 한국 남자야. 여기서 유명해." 나는 듣자마자 수십 년 한국에서 숨기고 있던 성 정체성을 뉴욕에서 맞은 해방감으로 맘껏 풀어헤치고 사는 한 남자의 스토리를 떠올렸다. 백 프로 상상이었다. 내 딴에야 기발한 상상력이라 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참 빈약했던 듯싶다.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에 외계인만큼의 거리감을 느꼈던 걸 보면.
이전 공연과는 완연히 달랐다. 엑소의 으르렁보다 자신감 넘쳐 보였고, 실제로 매력도 더 넘쳤다. 자신 있고 당당한 모습. '나'를 제대로 표현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조권은 트위터에 "나는 드랙퀸이 아니다." 했지만, 그건 '드랙퀸'을 정의하기에 달렸다. 조권은 표현의 문제에서 완전히 승리했다.
관객들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이 중고등학교 축제나 신입생 환영회 따위의 광경과 겹쳤다. 하는 이들은 수치스러워 죽으려 하고, 혹은 나아가 뻔뻔하게 여성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내고, 보는 이들은 손가락질을 하며 낄낄대던 순간들. 이전의 숱한 명절 프로그램과도 다르지 않았다. '나'가 아닌 것을 강제하면 싫을 수 있다. 무작정 '여장'이 부끄러운 것이라 여기는 이들을 비난할 순 없다. '여장'이 수치스럽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를 강제하는 자가 더 문제다. 다만, 여성들끼리 '남장'을 사용하는 방식은 사뭇 다름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하는 이들이 크게 부끄러워하지도 않거니와 보는 이들은 오히려 환호한다. 근데 모르겠다. 여장도 손가락질이 아니라 환호하는 이들이 많을지도.)
조권은 웃음이 아니라 본인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 것처럼 보인다. '흉내'가 아니라 '표현.' 수치스러워하는 표정 대신 위풍당당함으로 무장했고, 우스꽝스러움 대신 디바로서 매력을 어필했다. 그도 알고 있었을 거다. 이 무대를 완벽히 끝낼수록 "조권 게이 아니냐." "트랜스젠더냐." 하는 꼬리표가 붙으리라는 걸. 그래도 그는 굴하지 않고 프로페셔널하게 무대를 마쳤다. 그의 프로의식에 박수를. 그래미에서 찬밥 취급받은 비욘세에도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