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을 손질한다는 것

봄, 사랑과도 같은 나물

by 잰니

나는 채식을 하면서 알게 됐지만,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나물로 봄이 왔음을 체감한 사람들이 있었을 터다.

나는 이런 데 약한 어촌 출신이라, 뭐 그렇다고 어종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육식을 계속하고 있었더라면 육전 먹느라 시도해보지도 않았을 메뉴, 두릅 숙회와 튀김.

그것으로 내 두릅 인생은 시작되었다.


두릅을 처음 먹어본 식당에는 이후로 다시 가본 적 없지만, 두릅은 계속 먹어야 했다.

그게 아마 작년이었을 거다. 퇴근하고 먹을 게 없어 동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그 귀하시다는 두릅님이 생각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진열돼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해 먹는지도 모르면서 '안 사면 바보!'라는 확신이 들어 냉큼 사 왔다.




집에 와서야 어떻게 먹는 것인지 찾아봤는데, 이런. 손질이 있었다.

무릇 두릅이란 나물은 가시가 있어 하나하나 손질을 해야 한다고.

그때서야 다소 무섭게 생긴 가시들이 가지에 촘촘히 붙어있는 게 보였다.

그래, 해 먹어야지! 손질해야지!

칼로 슥슥 가시를 제거했다. 이만하면 충분한 걸까? 먹으면서 가시에 찔리는 건 아니겠지? 걱정되는 마음에 손질을 계속하면, 힘 조절에 실패해 잎이 떨어져 나가고.

예쁜 모습을 유지한 채 손질하는 게 이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제야 알았다.

아, 식당의 두릅 숙회 가격과 손질 전 두릅 가격의 그리도 차이 났던 이유. 이거 꽤 번거로운 나물이었네.

어쩐지. 맛있더라.


끓는 물에 한 2분 정도 데치고 나서 초고추장에 쏙쏙 찍어 먹었다. 먹는 건 어찌 그리 쉬운지.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직접 해먹은 두릅 숙회도 정말 맛있었다. 양이 많지 않다는 흠이 있었지만.


그리고 올해.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서운 겨울이었는데. 어느새 봄이 와있었다. 같은 봄인데, 한 차례 바뀐 내 환경 탓에 나는 더 이상 동네 마트에 가지 않고 마트 배달 어플로 주로 장을 본다.

혹 '들어왔을까?' 싶어 검색해 본 두릅. 있었다!

한 팩에 5천 원이 안 되는 알뜰한 가격. 바로 구입했다. 회사에서 어플로 구입한 식품들은 퇴근 후 조신하게 집 앞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두릅 손질에 들어갔다.


일 년이 흐른 뒤 오래간만에 해보는 두릅 손질이었지만, 어렵지 않은 조리방법이었기에 금방 기억해냈다. 역시나 번거로운 두릅 손질을 하면서 두릅 내음을 느꼈고, 새삼 봄을 느꼈다. 봄이 왔구나.




그리고 요즘 푹 빠져 있는 연예인의 사연이 생각났다.

두릅과 할머니에 얽힌 사연이었다. 그는 대구 출신으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상경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연습생 생활과 연예계 생활을 해내야 했다. 그 바쁜 와중, 고향에서 즐겨먹던 음식들이 생각났고, 그중 가장 좋아하며 그의 할머니가 챙겨 올려보네 준 메뉴가 두릅. 두릅이었다.

두릅을 간식 삼아 초고추장과 함께 싸들고 다니며 먹었다던 그. 그 얘길 들을 땐, '두릅 맛있지', '귀엽네' 정도의 감상이었는데, 오래간만에 봄을 맞이해 두릅을 손질하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두릅을 간식으로 올려 보낸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손질을 세게 하면 가지나 잎이 떨어져 나가니, 조심조심 임하면서도 혹시나 가시가 여린 아이의 입 안을 찌를까 하나하나 손질했겠지. 덜 익어서도, 너무 익어서 줄기의 아삭아삭한 맛이 없어져도 안 되니 적당한 때에 건져 올려야 했을 거다. 먹기는 또 얼마나 쉬워서. 간식으로 먹으라고 보내줄 정도면 적지 않은 양을 보내셨을 텐데. 손가락이 아려도 그 시간이 괴롭다기보다는 즐거우셨겠지.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따금씩 귤 철이 되면, 귤을 까달라고 졸랐다. 그런 걸 낯간지럽다고 생각하는 나는, 내심 '얘가 왜 이럴까' 싶었지만 어렵지 않은 일이니 정성스레 귤을 까주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말했다.

"귤에 있는 흰 줄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손질해서, 완전히 노란 부분만 보이는 상태의 귤이 좋아. 그런 귤을 만지면 촉감이 마치 아기 엉덩이 같아. 그런 귤을 한 입에 쏙 넣어 먹는 걸 좋아해." 그러면서 그가 아주 어릴 때, 한두 번 아버지가 그렇게 까주신 일이 있었고, 그때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다고 덧붙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말을 들으며 여러 개를 까주었던 듯하다.


사랑이란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닐까?

어떻게 마음이란 게 다루기 쉬울까. 너무 꽉 쥐면 어딘가 이상한 데로 튀어나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고, 느슨하게 쥐면 흘러내려 버린다. 조심조심 아기 다루듯 살펴보고 갖고 있는 모든 집중력을 끌어모아 몰입해야 한다.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게 마음.

이걸 깨끗하고 예쁘게 만들어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쥐어주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또, 사랑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런 마음은 소화하기에 참 쉽다. 상대가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기에.

누군가는 그게 너무 쉬워서 그냥 그렇게 넘겨버릴 것이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사랑을 느끼고 똑같은 마음을 돌려주려 할 테다. 사랑이란 그런 거니까.


겨울엔 귤, 이제 봄이 와 두릅을 먹으며 지난 사랑과 현재의 사랑. 그리고 미래의 사랑을 떠올린다.

모든 사람이 가진 사랑에 감사하며, 또 끊임없이 사랑하며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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