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잰니 May 25. 2022

동네 세탁소가 사라졌다

사장님과 주인 없는 세탁물은 어디로 갔을까?

백곰 세탁. 집 근처 빨래방이 사라졌다. 간판도 떼고 그 많던 세탁물이 온데간데 없어졌다. 정말 백곰이기라도 한 것처럼 백발이 희끗한 주인아저씨가 운영하던 점포였다. 다림질판에 놓인 작은 백열 조명만이 빛을 내는 어두운 공간. 불쑥 들어가 "사장님~" 부르면, 점포 안 작은 방에서 약주로 시뻘게진 얼굴을 채 숨기지 못하고 다박다박 걸어 나오셨다.  


불과 몇 주 전에 운동화를 맡겼었는데. 갑작스러운 폭우에 몸을 피하던 중 발견하고 말았다. 짙은 회색 시멘트만 남은 공간. 주인아저씨가 설핏 잠을 청하던 공간도 뻥 뚫려 있었다. 헛헛한 마음. 괜히 마음도 뻥 뚫린 듯했다. 


누군가 안 찾아가는 옷도 있었을 텐데. 무한대로 주인을 기다리던 옷가지들은 전부 어디로 갔을까? 마지막으로 옷을 찾으러 온 손님에게는 곧 영업 종료 소식을 전하셨을까? 앞으로는 다른 데 맡겨야 한다고 언질을 주셨을까? 나는 이제 어디에 운동화를 맡기지? 겨울철 이불도 맡기려 했는데. 늑장 피우다 결국. 


사실 어플을 써볼까 고민도 했었다. 이제 원룸촌에는 골목마다 코인빨래방이 자리 잡고 있고, 세탁 어플마저 나타나 인기를 끄는 요즘이니까. 그렇게 편하다고 하기에. 그럼에도 굳건히 동네 세탁소를 이용했다. 어릴 때부터 세탁소 앞 지나는 걸 좋아했다. 세탁소에는 오가는 손님과 옷가지, 뽀얀 증기와 섬유유연제 냄새가 있으니까. 이렇게 또 하나 동네 세탁소를 잃으니 괜히 울적하다. 하필 또 폭우가 와선.  


사장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대낮부터 얼큰하게 취해 계시던. 이따금씩 사장님께 큰돈을 드리면 "천 원짜리 없어?"하고, 옆에 오손도손 앉아있는 친구분들한테 거스름돈을 빼앗곤 하셨는데. 이제 친구분들은 어디에서 모이시려나. 마음이 쓰이는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옆자리를 지킨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