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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잰니 Jun 08. 2022

두 달이면 괜찮아져요.

이 마음마저 마르고 나서야 비로소 이별

마음이 무너져 내린 지 두 달이 되었다. 감히 겪어보지도 않은 교통사고를 들먹일 수 없고, 여느 노랫말처럼 맞아보지도 않은 총에 맞은 것 같다고 할 수도 없지만, 이 정도로는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딛는 걸음에 작은 돌조차 걸리지 않아 평온했던 길이 사실은 계단이라, 두 다리를 움찔하며 꿈에서 깬 순간. 조금은 스스로가 바보 같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한 감정이 밀려오는 상태였다. 오롯이 두 달은.


오롯이 두 달은 화장실에 조그맣게 난 창문 밖을 저녁마다 내다보았다. 가로등 밑에 누군가 걸지도 못할 전화를 망설이며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서 있진 않을까. 흰 택시가 골목을 꺾고 들어와 익숙한 누군가를 내려주지 않을까. 끝끝내 아무도 보여주지 않는 그 풍경을. 두 달을 오롯이 보았다.


두 달 새 열 번도 넘는 과음과 너 다섯 번의 외박, 다른 이와의 무의미한 키스, 다른 이와의 무모한 데이트, 인생 첫 수술과 3박 4일의 입원이 있었고, 수십 개의 혼잣말 같은 메모가 쌓였다.


네가 늦어서 다행이었다. 연휴를 본가에서 보내고 돌아온 밤. 버스는 예상 도착시간보다 이르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날 데리러 오겠다는 너를 지하철역에 들어가 기다렸다. 십 분, 이십 분. 기다림은 고되었지만, 군중 속 널 찾았을 땐 기뻤다. 나름대로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혼자만의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서글프다. 한데 네가 데리러 오는 것만으로 그날 서글픔은 내 차지가 아니었다. 부모님도 걱정을 덜었다. "내가 계속 데리러 갈게. 평생 서글프지 않게." 너는 거짓말을 했다. 나는 속도 없이 믿었다. 속도 없이 믿고 싶어서. 

 

이번에도 버스는 예상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어제보다 두꺼워진 눈썹달이 텅 빈 하늘에 떠 있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서글프지 않았다. 터미널에 네 흔적은 없었다. 네가 늦었던 탓에. 나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열차에 올라탔다. 두 달 전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왜 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지금은 아니, 사랑이란 원래 지키지 못할 약속을 서슴없이 내뱉는 일이지. 생각하고 만다. 내가 그 약속을 믿고 싶었던 만큼, 너 또한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을 거야. 그땐. 


두 달이 조금 넘은 지금. 몇 스푼의 미움과 몇 방울의 애틋함만이 남았다. 이 마음들이 마저 마르고 나서야 진정 이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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