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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잰니 Feb 06. 2023

좋알람이 없는 세상에서, 당신에게

이것은 어쩌면 픽션 같은 이야기

<좋아하면 울리는>이라는 웹툰이 있어요. 네, 맞아요. 김소현 배우 나오는 드라마가 그 웹툰 원작이었어요. 얼마 전엔 그 웹툰에 등장하는 동명의 쇼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도 방영했지요. 거기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있으면, 그 사람 앱에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라고 하트와 함께 숫자가 떠요. 얼마 전에 예능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훤칠한 당신이니, 회사에 있는 동안 당신에겐 다량의 하트가 떠있었을 거라고요. 그리고 내가 입사한 후로는 최소한 1개의 하트는 늘 떠있었으리라고요. 그래요, 그 3년의 시간 동안 말이에요.


그러고 보면 우린 한 번도 직접 인사한 적이 없네요. 그러니 두 눈 맞추고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죠. 그런데도 엘리베이터에 타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 구내식당에서 밥을 받고 앉을자리를 찾을 때. 내내 하트가 떠있음에 당황했을 거예요. 들켰을 뻔한 날도 있었을 거예요. 아니, 이미 오래전에 들켰을지도 모르겠네요.


회사 앞, 강가의 벚나무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를 기억하나요? 저마다 팔꿈치를 들어 올려 사진을 찍었죠. 나는 그러한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벚나무 아래 선 당신 뒷모습이 퍽 아름다워 보였거든요. 당신은 그 사진을 찍어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자에게 전송했을지 몰라요. 아니, 정말로 그러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나는 당신의 머리칼이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답니다. 


폭설이 내렸던 날도 기억해요. 그래요. 매 겨울 눈이 많이 왔지요. 그렇지만 내가 말하는 때는 명확합니다. 몇 번이고 회사에서 직원들의 안전을 우려해 이른 귀가를 권장한 해가 있었어요. 조난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과한 염려까지 되던 시기였죠.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 조심조심 눈 덮인 육교를 걸었어요. 당신이 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길, 기도하는 마음도 함께였지요. 


궁금한 게 정말 많았어요.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원래 말이 없는 성격인지, 대학교에서 무얼 공부했을지. 고향은 어디고, 지금 사는 동네는 어디며, 운동이 취미인지 같은 것들이요. 하다 못해 패딩입은 모습도 보고 싶었다니까요? 마치 연예인 좋아하는 아이 같았달까. 그랬어요. 


여전히 모르겠는 건, 내가 왜 이렇게까지 당신에게 끌리는지에요. 말한 대로 당신은 훤칠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습니다. 그렇지만 내게 그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았어요. 민트색 니트를 입는 날도, 남색 후드집업을 입는 날도 마찬가지로 의미 있었거든요. 


처음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첫인상. 그렇지만 나를 더욱 빠지게 만들었던 건 첫인상만은 아니었어요. 교감이었어요. 물론 인정합니다. 나만의 큰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요. 인사 한 번 한 적 없지만, 당신은 나를 아는 것 같았고, 내 존재를 이해하는 듯했어요. 내 마음까지도. 나는 그를 너무 과하게 읽히어서 인사도 조금의 소리와 표정도 낼 수 없었죠. 여러 겹으로 봉인된 빨간 실을 통과해 내야 하는 것 같았어요. 조금만 잘못하면 실을 건드려 당장 경보음을 울릴 것 같았죠. 불상사가 없으려면 얼어붙어야 했습니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이대로 시간이 흘렀네요.


작년부터 이직을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당장의 밥벌이보다 회사를 나가게 되면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신경이 쓰였어요. 그대로 사라질 순 없었습니다. 편지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접은 못 줄 것 같고, 모두가 퇴근한 시간에 당신 자리로 찾아가 책상 위에 살짝 두고 나와야겠다 막연히 다짐했죠. 그러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도 했어요. 어렵게 전달한 내 사랑이 트로피처럼 그대의 진열장에 놓이는 것 아닐까? 하고요. 인기가 많은 사람일 테니까. 인기의 증빙으로 전시되거나 어딘가 처박힐 수 있겠지. 전해지지 않는 마음이라면 전하지 말자. 


그렇지만 저는 기쁘게 드리려 해요. 당신이 거부할 수도 전시할 수도, 소중히 간직할 수도 있는 마음을. 주고 나서의 일까지 염려하진 않으려 합니다. 어쨌거나 나는 당신 덕분에 지난 시간을 활기차게 지낼 수 있었어요. 적어도 월요병은 없었거든요. 나날이 회사에 가는 게 즐거웠습니다. 어떤 힘든 하루를 보내도 당신을 마주칠 때면 기쁨이 넘쳐흘렀고, 아침부터 카페에서 마주치면 운이 가득한 날처럼 여겨졌어요. 밤늦게까지 일할 때도 외롭지 않았지요. 


그저 당신이 같은 건물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그러니 제게 당신과 차 한 잔 나눠 마시는 일은 얼마나 큰 일이겠어요. 또 당신이 이 회사를 떠난다는 소식은 얼마나 큰 일이겠어요. 말한 것처럼 저는 작년부터 하루빨리 회사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곧네 평안을 찾아 열심히 업무를 즐기고 있었는데. 당신이 사라지면 나는 이 건물에 혼자 남은 기분이 될 것 같아 두려워요. 네, 두렵습니다. 지금은. 그래서 떠나지 말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에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봐요. 좋알람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만에 하나, 내가 당신의 좋알람을 울릴 때 내 좋알람도 울렸더라면. 그래서 우리가 단 한 마디도 없이 서로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사실은 알아요. 이 세상에 좋알람은 필요치 않다는 걸. 좋아하는 마음은 송곳과 같아서 아무리 감추려 해도 모두 티가 난다죠. 혹은 기침과 같아서 결국 참지 못하고 말해버린대요. 말이 아니라 작은 스침과 눈빛, 업무적인 연락만으로도 티가 났을지 모르죠. 그래서 우리 둘 모두 사실은 서로의 마음을 눈치챈 지 오래되었다면. 우리의 티타임은 조금 더 의미가 있어질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쭉- 들뜨게 해 주었기 때문에, 당신은 늘 내 마음을 울리고 있었다는 것만은 알아요. 처음이지만 마지막이게 될지 모를 만남. 아니, 어쩌면 성사조차 되지 않을지 모를 만남에서 나는 당신 마음을 꼭. 울리려고 합니다. 그럼 그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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