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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잰니 Jan 16. 2023

우리 사랑의 방식

내 안에서 사라진 것과 엄마

언제일까. 내 안에 묵은 화, 응어리가 사라진 것이.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하루아침에 뿅 하고 증발한 것은 아닐 터다. 난 더 이상 헛헛한 마음에 하릴없이 빈 새벽거리를 걷거나 이불 덮고 우는 날을 겪지 않는다. 예전처럼 줄 이어폰을 귀에 꽂고 홀로 여행지를 걷곤 하지만, 만연한 행복감과 미소와 함께다. 이런 변화는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감사하게 언제 이렇게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걸까. 내 안에, 평안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부모님이 답답했다. 더 심한 말로도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없는 살림에 꾸역꾸역 제사를 지내는지. 친척들 아무도 안 챙기는 막내삼촌을 왜 부득불 엄마 혼자 살뜰하게 보살피는 건지. 그래서 싫은 소리도 많이 했다. 내가 성을 내면, 엄마는 세 배 네 배 성을 내었기에. 그 열렬한 기세가 보기 싫어 일부러 안 받은 전화가 끝없이 많았다. 한데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속에 천불이 나던 증상도 없어졌고, 휴대폰을 집어던지며 울지도 않는다. 비로소 평안이 온 것이다. 엄마에게도, 내게도. 



계산해 본 적이 있다. 일 년에 많으면 서너 번. 부모님을 뵙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40년이래도 200번을 채 못 본다. 말도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해서, 요즘은 가능한 자주 뵈려 노력 중이다. 지금 평안이 온 것이 참말 다행이다. 더 늦었다면 어쩔 뻔했어. 물론 평안은 그냥 오지 않았고, 서로의 부단한 노력과 조금의 운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본가에 갈 때면 항상 가볍게 떠났다. 어차피 집에 가면 입을 옷, 바를 화장품 다 있으니까. 한데 이번 연말엔 어쩐지 이것저것 사고 싶더라. 자라 세일기간에 맞춰 엄마가 눈여겨본 옷이 있었을지 물었다. 옷을 좋아하는 엄마답게 역시 후보가 있었고, 잠깐 휴가를 낸 틈에 파란 목폴라를 샀다. 소매에 단추 세 개가 붙어 있는 것으로. 그리고 지난번 엄마가 감탄했던 러쉬의 팩도 샀다. 엄마를 반겨줄 건 샀는데, 아빠를 위해선 뭘 사야 할지 영 감이 안 왔다. 역시 먹을 것인가?


언제 본 것인지 기억도 안 나는 박막례 할머니 영상이 떠올랐다. 과일을 좋아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손녀 피디님은 그렇게 신기한 과일을 공수해 맛 보여 드린다. 그럼 할머니는 일반 딸기가 훨씬 맛있다면서도, 손녀 덕에 '이라고 큰 딸기를 다 먹어본다'며 환히 웃었다. 소금빵이니 에그 타르트니. 유행하는 디저트들을 나 혼자만 누리고 사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어보지 못하셨을 법한 먹거리들을 사가기로 했다.


치즈타르트, 호두가 들어간 곶감찹쌀떡, 잠봉뵈르 샌드위치, 무화과크림과 그린어니언옥수수크림치즈를 곁들인 사워도우 빵..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아빠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소시지인데 엄마 때문에 못 먹었다며 특히 잠봉뵈르 샌드위치에 기뻐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구먼' 농담도 던졌다. 진심도 있으셨던 것 같다.


이번 설 명절을 앞두곤 조화 세 다발을 샀다. 

지난 추석에 엄마가 조화를 사지 못했다고 속상해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조화 역시 항상 엄마가 챙기는데, 보통 묘소에 가는 길 대형마트에 들러 사곤 했으나 그 해에는 그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낡은 꽃보다 부쩍 작고 늙은 엄마의 찡그린 표정이 더 신경 쓰였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 가장 예쁠 법한 조합으로 주문했다. 외가 쪽만 챙기면 아빠가 못내 서운해하실 것 같아 한 다발 더 골랐다.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친할머니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빠를 챙기고픈 마음에. 제사상에 올릴 킹스베리 한 박스도 샀다. 조상님의 은덕을 바라기보단 오늘의 내 부모님을 사랑하니까. 


엄마, 어깨도 안 좋은데 제사 꼭 지내야 해? 제사 한 번에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제사 지내봤자 조상님이 도와주시는 것도 없잖아! 


이게 아니라, 묵묵히 엄마가 하고 싶은 거 도와드리는 것. 색 곱고 더 화려한 조화를 고르고, 생전 먹어본 적도 없는 비싼 과일을 사들고 가는 것. 이 사랑의 방식을 이제야 터득한다. 



내 안엔 아직도 과거의 내가 있지만, 다 큰 내가 열심히 다독여준 덕에 얘도 많이 자란 것 같다. 

이제 엄마가 돌보는 4살짜리 아이가 밉지 않다. 그 아이를 예뻐하는 엄마에게 심통도 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 당시 엄마에게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받았고, 엄마는 최선을 다 했다는 걸. 이젠 안다. 그저 그 맹랑한 4살짜리가 9시 되면 꼬박꼬박 잠자리에 들어 엄마를 덜 괴롭게 한다면 좋겠고, 또 정답지 못했던 내가 부리지 못한 애교를 그 아이가 잔뜩 부려 엄마의 일부분도 채워진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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