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섯 살 때였다.
갑자기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기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옷 속에 베개를 빵빵하게 집어넣고는 임신한 모습을 흉내 내기도 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왜 이럴까 궁금했던 그즈음. 마침 선생님과의 상담이 잡혀 있었고, 나는 아이가 요즘 부쩍 아기 얘기를 자주 한다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아마도 같은 반 친구 때문일 거예요.
얼마 전에 동생이 태어났는데 귀엽다고
친구들한테 자주 얘기하거든요.
고울이도 동생이 갖고 싶었나 봐요.
혹시 둘째 계획은 있으신가요?
둘째.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맘처럼 쉽지 않았다.
때가 되면 들어서겠지 하던 게 아이가 벌써 다섯 살이 되었다. 이제는 가져야 되지 않을까 하고 슬슬 조바심이 나는 시기였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우리 집에 막내가 생겼다.
복슬복슬 하얀 털 뭉치에 동그랗고 까만 눈이 너무나도 예쁜 아기 말티즈가 우리 집에 왔다.
당장 아이에게 진짜 아기 동생을 안겨 줄 수는 없지만 이 귀여운 강아지를 막냇동생 삼아 예쁘게 잘 키워보자는 나와 남편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둘을 키우고 있다.
아이는 현재 일곱 살이고, 강아지는 얼마 전 두 살이 되었다.
지내온 시간만큼 둘은 잘 지내는 게 맞는 걸까?
얘네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유난히 인형을 좋아하는 이 털 뭉치 녀석은 호시탐탐 아이가 아끼는 새 인형을 노린다.
서로 자기 거라며 물고 뺐고 투닥거리다가 이미 싫증난 인형을 털 뭉치에게 주는 걸로 상황을 종료시키기도 하고, 아이가 만화에 푹 빠져 있는 사이에 식탐 많은 털 뭉치가 다가와 아이의 손에 쥐어진 과자를 얄밉게도 날름 뺏어 먹어 기어이 아이를 울리고 만다. 아이가 아끼는 크레용은 녀석의 개껌이 되어 버리고, 갑자기 뜬금없이 아이의 발가락을 앙 깨물어 울리기도 한다.
나열하다 보니 우리 집 강아지가 개구진 것처럼 보이는데, 맞다. 얘 좀 특이하다.
그런데 이 털 뭉치 녀석을 가만 보면 아이가 화장실 갈 때 나 대신 문 앞까지 같이 가주기도 하고,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맥주 한 잔 마시려는 찰나 잠결에 아이가 "엄마!" 하고 나를 찾으면 멍! 한 번 짖고서 나보다도 먼저 방으로 달려가 꼬리를 흔들며 아이의 얼굴에 킁킁 코를 갖다 댄다.
마치 '괜찮아. 나 여기 있어.'라고 안심시켜주듯이.
한 번은 동물병원에 갔다가 강아지의 피부가 예민한 편이니 앞으로 먹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고 처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그 얘기를 듣고는 대성통곡을 하며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강아지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과 미술 학원 선생님께서도 얘기한다.
고울이가 시로 많이 생각해요.
하얗고 털북숭이 강아지인데 엄청 귀엽다고 자주 얘기도 하고요.
얼마 전엔 시로가 아토피에 걸렸다고
걱정하던데...
지금은 좀 나았나요?
응? 집에선 서로 시큰둥하게 있을 때가 많은데?
그래도 자기 동생이라고 밖에서는 자랑도 하면서 뿌듯해하나 보네.
지금도 여전히 티격태격하고 있고, 나갔다 들어올 때 인사 한 번 나누고는 각자 따로 놀며, 산책 나가면 서로 자기 갈 길 가겠다고 여기저기 흩어지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아이와 강아지를 함께 키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평온하지도 않고, 사이좋게 뒹굴며 노는 그런 그림같이 아름다운 모습은 보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를 생각하고 맞춰가며 지내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흐뭇하고 사랑스러워서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오늘도 내 양 옆에 나란히 누워 자고 있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내 왼편엔 아이의 달달 시큼한 땀 냄새가 배어있는 머리카락과 오동통한 볼살이 보이고, 오른편엔 하얀 털 뭉치가 사람처럼 베개를 베고 옆으로 누워 있다.
아이의 단잠을 조심스레 깨우며 잘 잤냐고 볼에 뽀뽀를 하면, 질투쟁이 털 뭉치는 얼른 그 틈에 끼어들어 혀를 날름거리며 내 얼굴에 침범벅을 해댄다.
그 사이 잠에서 깬 아이도 질세라 내게 마구 뽀뽀를 해대고 털 뭉치도 계속 핥아대는 통에 내 얼굴은 금세 축축해진다.
두 아이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시작하는 아침.
내겐 행복으로 충만한, 더할 나위 없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