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뽑아주세요
중간고사의 꽃말은 벚꽃, 그렇다면 홍보회사의 꽃말은?
바로 공포의 '제안서'다.
새로운 리테이너를 따오려면 공포의 '비딩'을 해야 하는데, TV에 자주 나오는 프레젠테이션이 그것이다.
왜 있잖나, 슈트를 차려입은 멋진 본부장님이 PT에 나가고 촤르륵 멋지게 발표하고... 그러다 중간에 갑자기 잘못된 PPT가 꺼져버리는 사고가 나고, 본부장님은 말발로 그걸 커버해 버리고 멋지게 1등을 하고 만다.
홍보 회사의 현실 역시 당연히 그렇다.
잘생기고 키 크고 훈남인 본부장님이 PT 담당인 것은 물론이고, 저런 사고가 있을 때 수습할 수 있는 직원들이 수두룩 빽빽한...
네, 다음 꿈이요.
제안서는 주로 기업의 RFP를 받으면 시작된다. RFP는 Request for Proposal로 제안 요청서란 뜻이다. 이 제안 요청서를 받으면 대행사는 제안서 작성을 시작한다.
제안서에는 고객사가 원하는 방향성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대행사만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언론 홍보라면 어떤 기획 앵글을 잡을 것인지, 디지털이라면 어떤 시리즈물을 올릴 것인지, IMC라면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등을 제안 내용에 담아낸다.
아, 제안서의 꽃말을 말하는 걸 잊었는데 제안서의 꽃말은 '밤샘'이다.
제안서를 쓴다고 하면 주로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시간이 타이트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2주까지 제안서를 마치길 원한다. 그러면 그 기간에 맞춰 팀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낸다.
그리고 제안서 장표를 나눠 PPT 작성을 시작한다. 그렇게 제출을 하고 나면 TV에서 보던 프레젠테이션 - TV만큼 멋지진 않다 - 을 하고 비딩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뷰티 브랜드를 담당했을 때 아예 캠페인명부터 제안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립제품이었는데 그때 제안했던 것은 '어울림'과 '립'에서 착안한 '어울 Lip'이었다.
내 아이디어가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제안을 하다 보면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또 한 번은 주류회사를 아예 리브랜딩 하는 캠페인을 한 적도 있다. 그때도 역시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승부하기 위해 팀원들과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제안한 이름으로 주류가 전부 라벨링 됐을 때의 기분이란.
드라마에서 제안서 비딩에 성공하고 나면 팀원들이 뿌듯해하며 벅차오르는 장면을 한 번씩은 봤을 것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밤새 고생한 제안서가 채택되면 누구보다 뿌듯하고 벅차다. 기념으로 회식은 필수!
대행사 사람이라면 제안서와 밤샘의 추억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오늘도 추억을 먹고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