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델타호텔 Nov 22. 2023

인스타 중독? 그게 나라니

하루종일 인스타그램 들여다보기

인스타그램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하루의 시작은 어디에 가서 어떤 사진을 찍을지 고민하는 걸로 시작한다. 핫한 카페부터 팝업스토어까지, 인스타를 위해서라면 안 갈 수 없는 곳들이다. 

여행은 더 하다. 여행을 갔다면 사진 백 장 정도는 기본. 백 장을 찍어도 한 장 건질까 말까이기 때문에 한 장소에서만 백 장은 찍어야 한다. 


좋아요는 또 어떤가. 게시글을 올리고 나면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몇 개 눌렸는지 꾸준히 확인해야 한다. 좋아요가 없거나 적으면 괜히 민망해서 주변에 눌러달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 정도면 가히 인스타 중독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런 인스타그램이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겨우 50명 남짓한 친구들이 팔로우하는 내 계정 대신 몇 만 명이 팔로우하는 엄청난 계정이라면?


바로 기업 계정 이야기다. 




디지털 PR을 하게 되면 SNS 콘텐츠 기획부터 콘텐츠 제작 (물론 디자이너가 있다), 그리고 게시까지 담당하게 된다. 


일단 콘텐츠 기획은 어떤 콘텐츠를 올릴지, 어떤 방식으로 올릴지 생각하는 것인데 사진으로 올릴지 릴스나 동영상으로 올릴지 이런 것들을 정한다. 그리고 우리가 인스타에 무슨 사진을 올릴지 고민하는 것처럼 무슨 게시물을 올려야 좋아요가 많을지 늘 고민한다. 


이번엔 아주 예쁜 립 게시물을 올리기로 했다. 그러면 입술을 한 백 장 정도 찍는다. 눈밭에 놓인 립스틱도 천 장 정도 찍는다. 디자이너와 함께 카페에 가서 찍어보기도 하고, 회사 로비에서 찍어보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일단 찍어본다. 


그다음 사진을 고르고 보정을 한다. 내 사진보다 더 예뻐 보이게, 누구보다 아름답게 열심히 제품 사진을 보정한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게시일, 세상에는 인스타그램 좋아요가 많이 눌리는 시간도 정해져 있단다. 


주로 사람들이 점심 먹고 인스타를 보기 시작하는 시간대나 퇴근하고 인스타를 보기 시작하는 시간대 등등 이유도 다양하다. 고객사가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서 정한 시간에 맞춰 게시물을 업로드한다. 


업로드하면 그때부터 좋아요 전쟁이다. 고객사에게 보고할 KPI를 맞추기 위해 그때부터 좋아요 구걸을 시작한다. 좋은 게시물이라서 좋아요가 많이 눌리면 상관없지만, 좋아요가 적을 때는 주변 지인들에게 댓글과 좋아요를 살짝 구걸해서 조작하기도 한다. (이 정도는 애교로 봐주세요. 지인 많지도 않잖아요...)


이렇게 기업 SNS 담당자는 인스타 중독이 된다. 


다른 기업 SNS를 볼 때마다 우리 제품도 이렇게 찍어볼까? 하면서 저장 버튼을 누르게 되고, 밥 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심지어는 휴가 때도 쉴 틈 없이 SNS를 보면서 타 기업 SNS를 염탐하고, 우리 기업 SNS 좋아요 수를 관찰한다. 


이런 과정이 재밌으면서도 엄청난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첫 번째 기업을 퇴사했을 땐 나오자마자 개인 SNS를 전부 삭제하기도 했었다. (다신 보지 않겠다는 의지였지만 결국 또 SNS를 운영 중이다.)



한 번은 프랑스에 갔을 때 일이었다. 


에펠탑 영접을 눈앞에 두고 인스타그램 오류로 기업 SNS 계정 프로필 사진에 개인 SNS 프로필 사진이 업데이트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장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인스타그램 오류가 복구되기를 한 시도 기다릴 수없었기에, 기업 SNS 프로필을 새로 바꿔야 했지만 원래 프로필 사진이 내 폰에 저장되어있지 않았다. 


고객사에 연락해서 고객사만 가지고 있던 프로필 사진을 받아냈고, 다시 업로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든 것이 에펠탑 가는 지하철 개찰구 한 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디지털 AE는 개인시간이 없다. 


물론 퇴근은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SNS 중독자가 되면 이런 사태가 종종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는 건 내가 기획한 콘텐츠가 캡처당해서 여러 커뮤니티로 바이럴 될 때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만우절 기업들 장난 모음'으로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걸 볼 때 기업 SNS 담당자는 가장 뿌듯하다. 


이런 소소한 기쁨이 있기에 24시간 SNS를 들여다보는 중독자의 삶도 재밌는 게 아닐까. 


세상의 모든 기업 SNS 담당자가 좋아요 백만 개씩 받으며 웃을 수 있게 여러분, 기업 SNS 좋아요 많이 많이 눌러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도를 믿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