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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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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범 Oct 30. 2020

아름다운 결과물이 있기까지

자신의 삶 #1


근 일주일 동안 단순반복업무가 주가 되는 일을 이틀 정도 했었다. 흔히 노가다라고 불리울 법한 그런 일들이었다.


한 번은 급전이 필요해 단순 포장작업이 업무인 곳으로 단기알바를 갔었다.

국내 모 대기업 계열사의 직원들이 교육받을 때 쓰이는 비행기모형이 있는데, 그 모형을 조립하는 데에 필요한 부품들을 포장하는 작업이었다. 끝날 때가 다 되어갈쯤 알게 된 건, 애초에 하루종일 해도 다 끝내지 못할 양이었단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나인 투 식스로 8시간 내내 의자에 앉아 일을 하다보니 허리가 아파 오더라. 그렇게 될 정도로 오래 앉아 있던 적은 간만이었다.


또 한 번은 30년 넘게 인테리어를 해오신 어머니를 도와드리러 갔던 날이다.

인테리어 공사를 시행하기 전 집안 여기저기 기스나 찍힘을 방지하기 위한 보양작업을 하고, 20kg는 거뜬히 넘을 타일과 시멘트를 옮기고, 그에 준하는 무게의 폐기물자루들과 이미 사용해 먼지 한가득인 보양지들을 정리해 가져다 버리는 그런 종류의 작업들이었다.


몸을 쓰며 단순반복업무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분들에 비할 바는 아니나, 나 역시 이전에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노가다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다. 그때도 종종 느꼈던 거지만, 지금도 학생 신분으로서의 일상을 살아 가다 가끔씩 이런 종류의 일을 하다보면, 참 공부가 그리워진다. 앉아서 편하게 공부하던 책상이 그립고, 중간중간 쉬고 싶으면 쉴 수 있던 그 시간들이 생각난다. 어쩌면 노가다라는 게 나 같은 학생한테는 일상에서 공부 하기가 싫어질 때, 공부 의욕을 달아오르게 하기에 딱 좋은 '치트키'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무튼, 언제나처럼 일을 하는 중 샘솟는 공부의욕과, 일을 마친 뒤 찾아오는 후련함, 또 급여를 받은 뒤 다가오는 뿌듯함 같은 그런 것들을 느끼고 나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번듯하고 아름다운 결과물들이 만들어지기까지, 참 많은 손길노력이, 작업자들이 흘린 이 있구나.'


내가 완성한 포장을 받을 대기업 계열사 직원의 손에는, 달랑 비닐 하나 속에 조립 설명서 1장과 비행기를 조립하기 위한 몇 가지 조립품들, 그리고 모터와 LED등 정도가 들어 있을 테다.

조립품들을 일일이 뜯고 검수하고, 모터와 LED 같은 것들은 작은 비닐에 또 넣었어야 했고, 그 외에 수 단계의 반복업무를 거쳐 만들어진 완성본은 하루종일 해서 고작 90개였다. 물론 그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긴 했다.

비닐 속 조립설명서를 천 장 정도는 넣었고, 나머지 부품들도 백 단위의 개수까지 만들어 놓긴 했었으니. 그렇지만 당장 다음 날 필요했던 완성본의 최소분량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었다.

비행기 부품들이 들어 있는 그 비닐을 받을 직원은 나의 노력을, 단순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그 포장 과정을 어디까지 헤아려 줄까?


아파트가 새로 입주하면, 입주자들은 각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집안 인테리어를 맡기기 위해 우리 어머니 같은 인테리어 업자에게 찾아 와 상담을 한다. 대개는 '구경하는 집'을 찾아 온다. 내가 맡기고자 하는 인테리어가 실제로 어떤 식으로 시공되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델하우스라고도 불린다.

모델하우스에 찾아 오는 손님들은 '이미' 고급지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인테리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고급지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들이 있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관련 일을 해본 사람이거나, 이전에도 집안 인테리어를 맡기면서 시공 과정을 어느정도 지켜봤던 사람이라면 모를까.

물론 이해를 한다. 우리 어머니가 인테리어를 하시지만 나도 여전히 인테리어와 그 시공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많으니까. 많은 곳에서 적용될 법한 말이지만, 모르는 게 죄는 아닌 거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억지스러운 요구를 하는 손님들도 왕왕 있다는 거다.

개인사업이니까 어느정도의 디스카운트나, 서비스 요구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걸 서비스로 해달라거나, 불가능하거나 혹은 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을 법한 시공들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에 대해 잘 설명을 해준다 한들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럴 때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목격하곤 한다.


사실, 그런 결과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알아주어야 하는 게 소비자의 의무는 아니다.


그러나, 번듯하고 때로는 아름답기까지 한 결과물을 지켜보며, 그 결과물이 있기까지의 과정 속에 무엇이, 어떤 노력들이 들어갔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것 또한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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