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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범 Dec 04. 2020

조타기를 놓쳤던 순간들

자신의 삶 #2

감사하게도 브런치를 통해 작가라는 호칭을 얻게 된 뒤, 처음으로 발행했던 글에서 나는 타인의 삶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자신의 삶만을 살피며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할 뿐더러, 우리 인간 존재의 속성과 배치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삶을 바라보려면 자신의 삶을 먼저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아무래도 그 순서가 맞고,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 글에서도 순서를 분명히 했던 기억이 있다.


가령, 내가 형편이 정말 어려운데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성금을 모아 기부를 한다는 건 추운 겨울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누구나 다 칭찬할 만한 일이겠지만, 막상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그렇게 행동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먼저 돌보아야 하니깐.


좀 한정적인 비유인 것도 같지만, 맥락은 같다.

타인의 삶을 바라보기 전에 내 삶부터 살펴야 한다는 것.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내 삶을 살피기 위해 이제까지의 나를 되돌아보곤 하는데, 가끔은 스스로에 대해 알아간다는 게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 혹은 스스로를 알아감에 있어 한계를 목격할 때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진로탐색에 있어 뼈저리게 느꼈던 부분이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어렴풋한 장래희망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때는 이름이 멋있어 보이는 경찰관이나 소방관이라든가, 중학교 때는 어머니의 입김에 힘입어 나의 장래희망 순위표에서 3년 내내 당당히 1등자리를 꿰찼던 공무원이라든가, 혹은 고3 때 수능이 몇 개월 안 남은 시점에서 드라마 '닥터 이방인'을 보고는 아주 잠시나마 꿈꿨던 의사라든가, 그러한 장래희망들은 지금 돌이켜보면 구체적이라기보단 너무 흐릿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말로는 그런 것들로 내 직업적 목표를 설명하곤 했었지만(고3 때의 의사라는 목표는 당시 친구들에게 전혀 말한 적이 없었지만), 거기엔 그 목표들에 대한 열정이 없었고 따라서 실행력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스무 살 넘어서는 크게 두 번,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두 번의 경우 모두 나의 진로, 정확히는 직업적 목표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 한다는 것에서 이미 이전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스무 살 이후의 나에게 그렇게 진로를 고민한다는 건 꽤나 진지한 행위였다.

그리고 그 목표엔 그 전에, 그러니까 성인이 되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마음 가득한 열정과 그에 따른 실행력이 어느정도 뒷받침되어 왔다. 그런데, 그건 목표를 정한 뒤의 얘기였다.


나에게는, 그 목표란 것을 정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던 것이다.


본래 하고 싶은 직업이나 특별한 관심사 등이 없었기에, 나는 나의 여러 특성과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고려해 직업적 목표를 정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분명한 관심사가 딱히 있는 게 아니라, 그나마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것들,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것들, 그 외에 여러 여건들... 이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카드들을 살펴본 뒤 적합한 직업군을 탐색해야 했던 것이다.


마음 속 깊이 숨겨 두었던 이야기지만, 특히 목표를 찾고자 발버둥쳤던 두 번째의 경험은 정말 괴로운 것이었다. 한동안은 이제까지 살아온 짧지만 전부였던 내 인생이 아무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 20년 넘게 살아왔으면서 직업적 목표는 커녕 그걸 정하기 위해 고려해 볼 만한 큰 관심사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알고자 했지만 그것이 벅차게 느껴졌고, 분명한 한계를 느꼈었다. 내가 나를 너무 몰랐던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인생이라는 나룻배의 조타기를 다시 한 번 손에 움켜쥐고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진로를 찾아 헤맬 때는 이 방향 저 방향 헤매며 다녔다면, 지금은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항해 중인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에 방황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원망했던 그 경험은 여전히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신하고 살아왔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보면 난 내 삶을,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피지 않고 스스로를 너무 놓치고 있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일상을 살아가며, 종종 멈춰서서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급히 따라가다 보면, 어떤 게 나인지 잊어가 점점.

 멈춰야겠으면 지금 멈춰, 우린 중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놓쳐." - 독(feat. E-Sens), 프라이머리



난 앞으로 다시는 나를 놓치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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