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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Nov 24. 2022

수능 도시락

낯설다 너! 

드디어 아들의 수능이 끝났다.  

엄마로서의 모든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해 준 외동아이. 덕분에 수능 도시락도 처음으로 경험했다. 

수능 전 고3 엄마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당연히 도시락이다. 좋은 메뉴를 고르는 것도 문제지만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준 경험이 사실 별로 없다. 학교에 가면  매일 다른 메뉴의 뜨끈한 급식을 무료로 먹을 수가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지 않은한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지 않은가.


메뉴 선정도 어렵지만 새벽부터 부지런히 준비해서 아이의 시험에 영향이 없도록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부담과 걱정에 SNS는 수능 한참 전부터 고3 엄마들의 수능 도시락 챌린지가 유행이었다. 유난 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평생 한 번밖에 없는(한 번이어야 한다 제발..) 중요한 시험에 할 수 있는 정성을 다 쏟고 싶은 건 엄마들의 당연한 마음인 것 같다.


나도 그 챌린지에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게으른 탓에 그들의 화려한 도시락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응원과 공감을 보태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면 나중에 원망 들을까 봐 수능 한 주 전에는 수능 도시락을 미리 싸서 먹여보고, 가방에 맞는 사이즈의 도시락을 고르고,  간식들도 미리 먹여보는 등의 정성은 기울였다.

엄마의 미천한 요리 솜씨를 익히 알고 있는 아들은 다행히도 준비하기도 간편하고 본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유부초밥을 도시락 메뉴로 골라줬고, 중간중간 당 보충을 위한 에너지바와 초콜릿 몇 개, 커피, 생수도 챙기기로 했다.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유부초밥이라면 응당 유부를 사서 정성껏 졸이고 단촛물과 각종 재료들로 맛있게 만들어야 하겠지만, 우리에겐 몇 시간의 수고를 덜어줄 주부 9단 유부초밥 세트가 있지 않은가? 

슬프지만 아들도 알고 나도 안다. 내가 정성껏 만든 수제 초밥보다 주부 9단 간편 세트가 더 맛있다는 것을.  그래도 명색이 수능 도시락이니 약간의 수고로움은 마다하지 않고 야채와 좋아하는 스팸을 살짝 볶아 밋밋한 밥이 아닌 풍미와 색채가 담긴 유부초밥으로 수제 느낌을 내려 노력했다는 것만은 알아주시길.



"엄마 저 '소고기 뭇국'도 싸주면 좋겠어요. 저녁으로 먹고 나니까 속이 편하고 좋네요."

앗! 저녁으로 먹은 소고기 뭇국은  냄비 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먹은 뒤라 남아있는 게 없다.

내일 싸주려고 된장국을 슴슴하게 싹 끓여놨는데 갑자기 메뉴 바꾸기  있기 없기? 

"된장국이 소화에도 좋아. 그리고 중요한 건 재료가 없는데 어떡하지?.." 

아들을 설득하려고 시동을 거는 찰나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당장 나가서 재료를 사 오겠다고 한다. 

"애가 수능날 먹고 싶다는데.. 재료 당장 사 올게. 뭐 사 오면 돼?" 

말릴 틈도 없이 이미 옷을 챙겨 입고 카드를 달라고 한다. (맘은 급해도 계산은 정확한 남의 편ㅜㅜ) 

어떤 부위의 고기를 사야 하는지도 모른 채 마트로 뛰어간 남편은 몇 번이고 전화를 해서 묻고 확인하고는 제일 좋은 한우 고깃감을 사다 안겨주었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서툰 남편인데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사랑스럽다. 아빠의 이런 따뜻한 모습을 아들도 고스란히 보고 있어서 또 좋았다. 아빠가 표현을 못했을 뿐이지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조금은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없는 솜씨로 나름 최선의 뭇국을 끓여, 제일 밑 칸에는 유부초밥, 중간은 소고기 뭇국, 위칸은 샤인 머스캣을 코끼리 보온도시락에 층층이 쌓아 올렸다.

  '떨지 말고 잘 봐.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만 해.' 

도시락을 싸는 내내 주문을 외우듯 빌고 또 빌었다. 

엄마와 아빠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가방에 쑥 밀어 넣고, 아들은 수험생 입실이 시작되는 6시 30분에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수능날 이른 아침은 아직 어둑하다. 새벽별을 보고 시험장에 들어가 다시 이렇게 컴컴할 때 즈음에 나오겠지..

하루 종일 좁디좁은 책상에 앉아 하나라도 더 풀기 위해 애를 쓸 아이를 생각하니 울컥울컥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다행히 날씨도 맑고, 춥지도 않고, 미세먼지도 없다.

잠도 푹 잘 잤고, 아침에 화장실도 잘 다녀온 아들이 부디 제실력을 다해서 잘 마무리하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수능을 겪으며 너도 나도 또 아빠도 인생의 한고비를 넘어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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