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 Dec 11. 2023

책 한번 출간해 봤다고..

다 작가가 되는 게 아녀!

첫 책을 출간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그땐 지금과는 다르게 열정이 있었다. 기간제 교사라는 불안정한 신분이 만들어 주는 열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30대였기도 했고, 또 아이를 키우는 동안 하루의 루틴이 짜여 있어서 자야 할 시간에 자고, 열심히 밥하고, 일하고, 남는 시간에 취미생활도 하고 글도 열심히 썼다.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책 한 권 분량이 나와서 여기저기에 투고를 했고, 생각지도 않은 출간제의 까지 들어왔다. 결국 누구나의 버킷리스트에 하나쯤은 랭크되어 있는 나만의 책 출간하기를 비교적 순조롭게 할 수 있었다.




딱 거기까지다.

첫 번째 책 출간보다 더 어려운 것이 두 번째 책 출간이라도 하던데

점점 게을러지고, 유튜브는 점점 재미있어지고, 술은 맛있어지고, 아이도 고딩 수험생활을 무사히 잘 마치고 대학의 기숙사에 있기에 열심히 밥을 하지 않아도 되니 루틴이 많이 무너져서... 글을 쓸 시간이 나지 않는다. 

이상하다. 절대적인 나만의 시간은 너무 많아졌는데, 글을 쓸 시간은 없다. 기간제 교사일 때는 임용고시를 대신할 수 있는 어떤 커리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책 한 권을 뚝딱 쓰도록 만들었던 것 같은데, 임용고시에 통과하고 정규교사가 된 지금은 배가 불러서 그런지 글을 쓸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뒹굴거리고 폰을 붙잡고 있고, 신변잡기 기사 따위에 심취해 있다.

가끔은 누워서 핸드폰을 너무 붙잡고 있어서 손가락과 어깨가 짓 눌려서 피가 안 통하는 게 느껴지는데도, 쓸데없는 유튜브 쇼츠를 계속 돌려보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뒹굴거리며 폰을 붙잡고 있다가, 더 이상 볼 것도 없어서 남편이 선물로 준 윈도 서피스로 글쓰기 놀이를 하고 있다.

오래간만에.. 좋네

예전에 글을 한참 쓸 땐 커피와 음악을 준비해 놓고, 한 껏 '나는 작가다'라는 생각에 심취해서 글 쓰는 행위 자체를 즐겼었던 게 생각이 난다. 그 느낌이 참 좋았었는데.. 책을 한번 출간했었다는 것이 작가놀이에 더 심취하게 해 주었던 큰 이유였던 것 같다. 한껏 도취되어서 정말 몇 시간이고 재미있게 글 쓰는 놀이를 했었다.

내가 글을 쓰고 있으면 남편도 흐뭇한 표정으로 "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주위를 서성였고, 향초를 피워주기도 했고,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끄적였었다.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던 아들도 엄마 글 쓰냐며 왔다 갔다 하며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이내 내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닌텐도를 하며 각자의 느긋한 시간을 즐겼었다.


그랬구나. 참 좋았었구나.

꼭 좋은 글을 쓰지 않아도, 내 기대에 또는 다른 이의 기대에,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글 일 지라도, 글을 쓰고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내 마음을 글자로 옮기는 그 행위와, 그 기분과, 그 시간의 공기들이 그것 자체로도 참 좋았었구나.




지금도 뜨끈한 반신욕기에 앉아

별거 없는 글을 끄적거리는 이 시간도 조용하고, 평화롭고, 참 좋은 시간이구나.

두 번째 책 따위 출간 못해도 괜찮다.

그저 글 쓰는 놀이가 주는 이 공기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라도 다시 글도 쓰고 발행도 하면서 활력을 찾아야겠다. 뭐 꼭 엄청 잘 써야 글인가! 내 마음을 잘 표현하면 좋은 글이지! 

그리고 꼭 멋들어지게 '작가'가 될 필요는 없지. 그냥 글 쓰는 놀이 하는 사람도 꾀 근사하네.


오늘은 오래간만에 다시 발행도 해보련다.  

뭐든지 가볍게! 힘 확~ 빼고! 아자!





매거진의 이전글 수능 도시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