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 Jan 15. 2024

드디어 혼자

딱 20년이 걸렸다

혼자 훌쩍 집을 나설 수 있게 된 것이...

'나 혼자'로 살아왔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엄마'로서의 생활은

적잖은 당황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먹고, 자고, 싸는 단 한순간도 '혼자'가 허용되지 않았던 육아의 고단함..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참 많이 울기도 했는데

아이의 재롱을 보며, 커가는 모습을 보며, 또 잘 키우기 위해

나를 죽이며, 엄마의 모습을 갖추어 갔던 시간들이 벌써 20년 이라니

지나고 보니 찰나 같다.





꼬꼬마였던 내 아들이 벌써 대학교 1학년을 무사히 마쳤고

듬직한 청년이었던 내 남편도 벌써 50대 중년이 되었다.

철없던 새댁이었던 나도 평범한 40대 아줌마가 되어있는 걸 보니

아이 키우며 정신없이 지내온 20년을  무사히 보낸 것 같아서 안도감이 오기도 한다.


그래도 점점 나이에 연연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40대, 그것도.. 후반, 낼모레 50대

인사치레로 듣는 동안이라는 이야기도 그다지 위로가 되진 않는다.

내가 봐도 이젠 꾀나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외면하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거울을 보면서 짙어지는 주름을 손으로 펴보고

쳐지는 얼굴을 당겨서 올려보고

늘어가는 흰머리를 계속 뽑아본다. (이젠 너무 많아서 계속 뽑다가는 대머리가 될 것 같다)

다행히도 몸무게는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무섭게 배가 나온다.




이제 겨우 아들내미 다 키워서

밥 신경 안 쓰고 훌쩍 집을 나설 수도 있게 되었는데

내 젊음은 온데간데없고 달콤한 혼자만의 고독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다.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이라도 즐길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젊음이 있던 그 시절에는 나만의 시간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몰라서 친구들을 찾아 헤맸었는데

이젠 나만의 시간을 즐길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젊음이 없더라도 괜찮다며 애써 정신승리를 해본다.





솔직히 젊음을 다시 준다고 해도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힘들게 힘들게 인생의 숙제를  해왔는데

다시 처음부터 한다면 더 잘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어차피 늙어질 텐데 다시 돌아가서 뭐 하겠는가.

뭐든지 지금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면 좋아지더라.

옛 시간들에 대한 후회로 몸서리치게 나를 미워하기도 하고

앞으로 올 날들에 대한 걱정으로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는 날들도 많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가 바꿀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건 지금 현재뿐이니

지금 내가 20년 만에 누리고 있는 이 달콤한 혼자만의 시간과, 평온함과, 잔잔한 음악을      

온전히 느껴보리라.     

20년 이라는 시간을 꼬박 써야만 얻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오늘은 꼭..

'무사히 잘 살아오셨다는 상장' 같이 느껴지네 ..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의 목표가 있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