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병원에 다녀왔다.
대장내시경이 포함된 건강검진이었다.
"빨리 오면 안 될까?"
검진예약은 1시 30분이었고, 대장내시경은 3시에 잡혀있었고, 나는 엄마께 11시까지 가겠다고 했다.
병원과 집은 차로 20분 거리다. 그래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딸이 빨리 보고 싶어서겠지.. (설마 병원에 엄청 빨리 가려고 그러는 건 아닐 거야)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성격 급한 우리 엄마는 예의상 딸의 눈치를 살짝 본 뒤
1시 30분 검진예약인데 11시 40분에 집을 나서자고 한다.
어차피 기다리는 거 병원에 가서 기다리자고 한다.
내가 고집부리면 늦게 출발할 수야 있겠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동안
안절부절못할 엄마가 떠올라 그냥 엄마의 의견대로 일찍 집을 나섰다.
병원에 도착하니 역시나 직원들 점심시간이라 아무도 없다. 무려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자주 있는 일이라 화가 많이 나지는 않았다.
"오메오메 여기는 다른 병원이랑 점심시간이 틀린갑네.. "
너무 일찍 온 스스로에게 민망했는지 다른 병원과 점심시간이 다르다며 연신 병원 시스템을 탓하신다.
딸이 집에 갈 때 길 막힐까 봐 걱정스러웠겠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 가라앉히기 마인트 컨트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병원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구경했다.
결혼과 함께 떠나온, 나의 유년시절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 연희동
일찍 온 덕분에 엄마와 홍제천 인공폭포 구경도 하고, 근처 카페구경도 하고, 커피도 마시니
성격 급한 엄마로 인해 덩달아 조급했던 마음이 차츰 사그라들었다.
한참 산책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검진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엄마와 로비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엄마의 고정 레퍼토리가 1절부터 시작된다.
언니가 어릴 적부터 말을 잘해서, 울 때도 "엄마가 이거를 안 해주니까 울지~ "하면서
꼭 이유를 갖다 대면서 울었다는 이야기
나는 이빨이 나올 때부터 썩어서 나와서 젖을 조금밖에 못 먹었다는 이야기
오빠는 워낙 순해서 젖을 많이 못 먹어도 잘 울지도 않았다는 이야기
오빠는 태어날 때 너무 작게 태어나서 걱정했는데 그렇게 쑥쑥 잘 크더라는 이야기
오빠는 머리숱이 원래는 엄청 많았는데 갑자기 나이 먹더니 대머리가 되었다는 이야기
오빠 생일이 곧 다가온다는 이야기
그래서 오빠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
아직도 오빠가 죽었다는 것이 꿈속의 얘기 같다는 이야기...
건강하던 오빠가 갑자기 췌장암으로 떠난 지도 벌써 8개월째다.
하늘이 내린 효자였던 울오빠
엄마의 말에는 단 한 번도 거절을 하지 않던 울오빠
두 여동생들도 살뜰히 챙겼던 착하디 착했던 울오빠였는데..
엄마랑 있는 순간이면 유난히 오빠가 왜 그렇게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봄이 되면 오빠 생일 즈음에 오빠 수목장에 같이 가자는 약속으로 오빠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안 그러면 검진 시작도 전에 엄마가 대성통곡할지도 모른다)
검진을 잘 마친뒤, 엄마를 집으로 모셔드리고 나도 집으로 돌아오는데
라디오에서 오빠가 좋아하던 남궁옥분의 '재회'가 흘러나온다.
"잊었단 말인가 나를 타오르던 눈동자를.. 싸늘히 식은 찻잔 무표정한 그대 모습~"
따라 부르다가 기타를 치며 열심히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노래하던 오빠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결국 엉엉 울어버렸다.
엄마를 보고 오면 그 엄마를 끔찍이도 아끼던 오빠가 생각나서
너무나 그립다.
오빠 내가 더 잘할게. 엄마 걱정 하나도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