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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May 13. 2024

무서운 체육대회

보건교사에겐 일 년 중 가장 완벽하게 바쁜 날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5월은 늘 즐거웠던 것 같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축제나 체육대회가 있어서 행사들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신나는 놀이였다.

지금 우리 학교도 중간고사가 끝난 지난주부터 체육대회 준비로 현재 난리가 난 상황이다.

학생들은 붕 떠있고, 댄스팀들은 쉬는 시간마다 여기저기서 춤을 추고, 

각반 예선전이 있을 때마다 담임교사들과 학생들이 '우리 반 이겨라'고 있는 힘껏 응원하느라

학교가 일주일 내내 들썩들썩하다.

게다가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교생선생님들도 남녀 골고루 6명이나 와 계신다. 

(각 반 예선전 응원하는데 왜 교생샘들까지 나와서 꽹과리를 치는 건지.. 샘나게 ㅎㅎ)

중간고사 끝,  연두색 5월, 신나는 체육대회, 예쁘고 잘생긴 교생선생님, 끝장나는 봄날씨..  모든 것이 완벽하다.


보건교사인 나에겐 완벽하게 바쁜 날이다.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예선전 들로 보건실은 평소의 서너 배 이상의 환자로 북적인다.

외상환자가 가장 많고, 계주 연습하다가 구토하는 학생들,

점심도 안 먹고 댄스연습하다가 쓰러질 것 같다고 오는 학생들(이 자식.. 공부를 좀 그렇게 해보라는 말이 턱 끝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각종 연습에서 친구들과 교류하지 못해 마음이 힘든 학생들..

각양각색의 환자들을 짧은 기간 동안 모두 접할 수 있는 완벽하게 바쁜 시간들이다. 




내일은 대망의 우리학교 체육대회 날이다. 

오륜기가 달렸고, 천막이 쳐졌고, 간이 의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는 내일 과연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아니지,  큰 부상 없이 무사히 잘 지나가기만 하면 까짓 점심 따위 못 먹어도 괜찮다. 

작년에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공황장애로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학생을 학생부장이 데리고 왔고,

그 학생을 안정시킬 새도 없이 우울증 학생이 울면서 보건실에서 쉬게 해달라고 와선 체육대회가 끝날 때까지 누워있었다. 외상환자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마음이 아픈 학생들이 보건실을 장악했었고, 하루종일 각종 외상, 복통, 두통, 현기증, 실신, 생리통, 일사병 등등 응급간호학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환자들이 쏟아져 들어왔었던 정말로 진실로 완벽하게 바쁜 날 이었다.






겁이 난다. 

겁이 날 땐 준비하고 점검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수밖에 없지. 

드레싱카트를 빵빵하게 채우고



구급낭 점검도 해놓고


자동제세동기 점검도 완벽하게 마쳤다. 



내일이면 이 운동장에 학생들이 가득 차겠지?

이왕 바쁜 거 하늘이 오늘처럼 이렇게 새파랗게 예쁘고, 미세먼지도 없어서 학생들에게 진짜로 

완벽한 날이 되었으면 좋겠네. 

나는 보건교사로서 완벽하게 처치를 해 줄 테니 다치더라도 적당히만 다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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