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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Nov 25. 2020

쌤이 거기는 봐주기가 힘들어..

어디서든 예상치 못한 상황은 어김없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응급실 간호사로 일할 때 힘든 부분 중 하나가 타인의 국부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주 마주한다는 것이다.  남자 환자의 인공 도뇨는 대부분 응급실 인턴 의사가 실시 하지만 무의식 환자나 정신이상 환자들, 또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주요 부위가 노출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보건교사로 일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중요 부위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든 예상치 못한 상황은 어김없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그 일이 있었던 것이..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5년의 전업주부생활을 청산하고 아파트 단지 앞 초등학교에서 이제 막  기간제 보건교사 일을 시작한 사회 재 초년병 시절이었다. 작은 것에도 당황하며 허둥대던 바보 시절이며, 집에서 오래 묵혀진 아줌마 같아 보이지 않기 위해 외모와 에튀튜트 에 무척 신경을 썼다. 목소리는 적절히  띄워 공기반 소리반이 잘 버무려져 나 상냥해요~ 를  내뱉고 있었으며, 긴 웨이브 머리를 늘어 뜨려 삼십 대 중반의 나이를 단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려 발버둥 쳤었다. 상냥한 보건교사, 나름 청순한 보건교사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두터운 가면을 쓰고 살던 나였다. 



다다다 다다다다 

”아아아 아아야~~“

복도 끝 저기서부터 비명 지르며 달려오는 소리가 요란하다. 응급이다 싶어 벌떡 일어나 보건실 문을 열자마자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뛰어 들어온 남학생의 얼굴 표정이 심상치 않다.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얼굴이다. 

”왜? 왜? 왜? 무슨 일이야? “

지금의 단호함과 유유자적함은 찾아보기 힘든 풋내기 보건교사는 남학생만큼이나 불안감으로 허둥댄다.

”거기 거기 거기 거기가 따가워요. 살이 벗겨졌어요. 아파 아파 아파요. “

가만 보니 며칠 전에 다녀간 초등 1학년 아이다. 덩치는 또래보다 크며 다부진 체격이 어린이인데도  남자다운 풍모를 지녔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다급하고 안절부절못해하는 걸 보니 어디가 심각히 다친 것이 분명하다. 

”거기? “ 

음..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잠시 당황하며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한다.

”거기 거기 거기 거기요! 아~ 따가워 따가워요! “

급기야 엉엉 울기 시작한다.

”살이 엉엉 다 벗겨졌어. 빨개요 오오. 엄마아~엉엉 “

거의 패닉에 가까운 모습으로 엉엉 울고 있는 아이 때문에 내 머릿속까지 웽웽 울리는 것 같다. 

”얘 잠깐만 진정하고, 선생님한테 아픈 곳을 정확하게 얘기해줘 봐.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거야? “

”여기요 여기 으앙! “

아이의 손가락은 정확히 중요 부위를 향하고 있었다.

정확한 용어를 써야 하나? 아니면 어린이 용어를 써야 하나? 성교육의 달인이 된 지금은 정확한 용어를 쓰며 눈 하나 껌뻑하지 않고 사춘기 남녀 어린이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 한 줌의 당황한 기색 없이 생식기와 부속들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청순과 상냥의 가면을 쓴 초짜 보건 샘이었다.

”고.. 고.. 추? “

”고추 고추 고추 으아 고추 살이 벗겨졌어요. “

어쩌다가 고추 살이 벗겨졌냐고, 바지 지퍼에 끼었었냐고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울기만 하는 녀석 앞에서 나도 울고 싶다. 아무리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해도 중요 부위는 봐주기가 힘든 법이다. 혹여 내 의지와 상관없는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앞선다. 




엄마한테 전화를 해봐야 하나?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할까? 복잡하게 머리만 굴리고 있는데, 다급한 남학생은 

아무런 처치도 해주지 않는 초짜 샘이 답답했는지 급기야 주섬주섬 바지를 내리기 시작한다. 

왜 그러냐며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너희 담임선생님이 남자 선생님이니 전화하면 금방 내려오실 거라고 뜯어말려봤지만 훌러덩 이미 다 벗었다. 


고개를 휙 돌려서 보지 않고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하자며 슬금슬금 전화기 쪽으로 가려는데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에라 모르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왜 아픈지나 봐보자. 비장하게 의료용 장갑을 하나 착용했다. 살이 까졌다고 하니 혹시 나쁜 상황에 있었을 수도 있다.(예를 들어 성폭행 같은) 마음을 가다듬고 나는 선생이며 의료인이다, 침착하자고 침착하자고 계속돼 내이며 심각히 환부를 살핀다.

 이 상황이 너무 싫다. 병원에서는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 나 혼자 판단하는 일 없이 철저히 의사의 오더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보건실은 학교 유일의 의료인으로서 모든 의료적 판단을 혼자 내려야 한다. 




마치 집도의가 환자의 환부를 살피듯 비장한 모습으로 찬찬히 중요부위를 관찰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살이 다 까졌다던 아이의 고추가 멀쩡하다. 그런데 왜 울지?

”음.... 얘? 멀쩡한데...? “

”아녜요. 이거 봐요. 살이 까졌잖아요. 원래 이렇게 안 생겼단 말이에요. “

가만히 살펴보니 아직 포경수술을 하지 않아 귀두 부위를 덮고 있던 포피가 젖혀지며 예민한 귀두가 드러나 따갑게 느껴졌던 것이다. 게다가 귀두 부위 주변으로 빨갛게 염증이 생겨 약간 부어 있기도 하다. 이대로 방치하면 피가 나기도 한다. 일단 아이에게 살이 벗겨진 것이 아니라 고추의 머리(?)를 덮고 있는 살이 뒤로 밀려서 그렇다고 안심시켰다. 뚜껑처럼 벗겨졌다가 다시 덮였다가 하는 거라며 다시 덮고 나면 하나도 안 아플 거라고 선생님이 도와주겠다고 하니 알아들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거린다. 

거즈로 슬쩍 다시 포피를 올려 귀두를 덮도록 하는 간단한 처치를 한다.




”안 아파요. 다시 모양도 돌아왔어요. 우와! “

보건실이 떠나갈 듯 울던 애가 언제 있었냐는 듯 금세 멀쩡한 얼굴로 안 아프시다니 어쨌든 다행이다. 아마도 엄마가 씻기면서 다칠까 봐 포피를 젖히지 않는 상태로만 씻겼던 모양이다. 그러니 아이도 젖혀진 모양을 처음 보았겠지. 제대로 씻지 않은 귀두 부위에 염증이 생겨 벌겋게 부어있었던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짬짬이 성교육을 해준다.

”친구야. 이거는 살이 까진 게 아니고 원래 이렇게 생겼는데 피부로 덮여 있어서 그동안 몰랐었던 거야. 근데 엄청 중요한 곳이고, 세균맨들도 엄청 좋아하는 곳이라서 샤워할 때 꼭 피부를 당겨서 아까 나왔던 머리가 잘 나오게 해서 비누로 닦아줘야 해. 그래야지 세균맨이 친구 하자고 안 하는 고예요. 알겠어요~~? “


혹시 몰라 어머니께도 전화로 사실을 알리고 똑같은 성교육을 해드렸더니 고맙다며 엄마보다 보건 샘이라서 역시 꼼꼼하시다며 감사하다며 연신 인사를 하신다.

오늘부터는 꼼꼼히 씻고 뽀송하게 관리 잘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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