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응급실을 잘 다니다가 보건교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처음 꺼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병원에서 착실히 커리어를 쌓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조언도 들었고,
“임용고시 엄청 힘들다던데, 할 수 있겠어?”라는 걱정이 가득한 물음도 받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간호사가 아닌 다른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대학병원의 3교대 생활이 너무 힘들었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일을 계속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 고민의 끝에는, 간호사의 꽃이라 불리는 ‘보건교사’가 있었다.
보건교사는 단순히 직업의 경계를 넘는 사람이 아니다.
간호사라는 뿌리 위에, 교육자로서의 가지를 뻗어야 하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요구받는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맞이하며 시작되는 하루는 단순한 치료들로만으론 채워지지 않는다.
복통을 호소하는 아이를 살피고, 수업 시간에는 건강에 대한 존중과 다양한 선택에 대해 가르치며, 동시에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대응하고, 행정실과 마찰을 조율하고, 담임교사와의 소통, 학생들과의 은근한 기 싸움, 업무 분장으로 인한 갈등 속에서 속이 타들어 가는 날도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의료인, 교사, 각종 행정업무를 아우르는 이 정체성이
나에게는 오히려 보건교사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주는 단서가 되어주었다.
“나는 교사다. 그러나 동시에, 전문 간호사다.”
이 두 가지 정체성은 매 순간 서로를 보완하며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고 있다.
보건수업을 하다가 응급환자 처치를 하러 뛰어나간 적도 많았고,
우울증 학생을 상담하며 위로해주다가, 체육관에서 발생한 개방성 골절환자를 싣고 119를 타고 병원에 동행한 적도 있었다.
교사로서의 역할과 의료인으로서의 역할을 실시간으로 오가야 하는 이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런 순간들 속에서,
‘나의 전문성이 살아 있다’는 생각을 가장 뚜렷하게 했다.
의료인으로서의 전문성위에 교육자로서의 따뜻한 마음과 진심을 다해 살핀 한 마디,
“너, 진짜 괜찮니?”라는 말이
간호 전문지식 위에 교육자의 언어를 얹은, 이 직업만의 특별한 기술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아이들은 보건실을 단지 ‘아플 때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쉬어가고 싶은 날, 마음을 알아줄 어른이 필요할 때, 보건실을 찾아온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 으로 존재하고 싶다.
물론 보건교사로서 학생에 대한 의심도, 무기력도, 상처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껴안고 다시 출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건실이라는 이 작은 공간이 아이들의 가장 안전한 피난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간이,
의료인이면서 교육자인 나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가장 꽃피우는 곳이라는 것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으면 행정실장을 시키고, 딸을 낳으면 보건교사를 시켜라"는 학교에서의 우스개 소리가 있다.
행정실장이나, 보건교사가 남들 눈에는 가장 쉬워보이기에 나온 말이리라.
그러나, 보건교사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학교에서 단 한명의 의료인이라는 압박감과 각종 의료적 판단을 오롯이 혼자 내려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이 항상 따라다니는 자리이다. 또한 날로 높아지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부응을 강요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학생의 성장의 길에 함께 서있다는 깊고 단단한 의미로 가득 찬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길 위에 선 나는,
단지 직업을 선택한 사람으로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생명과 마음을 함께 지켜내는 어른으로,
또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선명하게 그려가는 그런 보건교사로 서 있고 싶다.
이제, 보건교사가 되기 위한 그 첫걸음을 내딛는 당신에게 이 글을 전한다.
간호학과를 다니며, 혹은 병원 근무를 마치며,
어딘가에서 교사의 삶을 꿈꾸고 있는 당신이
이 길 위에서 자신만의 보건실을 열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 연재 예고 | 『보건교사 되는 법, A to Z』
→ 자격, 교직이수, 임용시험, 기간제 진입, 수업, 현실까지 모두 담아냅니다.
다음 글: 보건교사 자격요건 한눈에 보기 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