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아닌 나의 선택으로 다시 선 자리”
나는 보건인턴요원으로 처음 학교에 발을 들였고, 그 후 8년간
기간제 보건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매년 2월, 발령 시즌이 오면 매번 마음 고생을 해야했다.
운이 좋으면 같은 학교와 재계약이 되기도 하고,
어느 해는 전혀 새로운 학교로 옮겨가야 하기도 했다.
언뜻 보면
‘꾸준히 일하는 안정된 경력’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매년 반복되는 흔들림과 공허함이 있었다.
그녀는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은 사람이다.
내가 믿고 있던 일자리의 안정성은
그녀 앞에서 허물어졌고,
‘계약직이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나는
더 이상 그 말에 힘을 실을 수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녀는 내게 귀인이었다.
불안 속에 안주하려던 나를
거칠게 흔들어
그녀의 등장으로 나는
처음으로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집 앞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며
학생들과 동료교사들과 참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나를 그저 ‘보건 선생님’으로 받아주었고,
교사들도 동료로서 깍듯이 대해주었다.
‘기간제’라는 글씨는 내 마음속 한켠에만 있을 뿐
그 누구도 나를 차별하거나, 남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가끔씩 움츠러드는 내 마음만 잘 다스리면서 당당하게 잘 살아가면 되었다.
정규직에 대한 갈망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는 그저 지금의 따뜻함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2월이 되면 어김없이
불안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역보건교사회 임원이었던 그녀의 전화가 걸려왔다.
겉은 원론적인 설명이지만, 속뜻은 분명했다.
몇 해에 걸쳐 반복된 나를 향한 직접적인 압박은 버텨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버티던 내가 미웠는지
결국 교육청에 민원까지 넣었다.
나는 재계약되지 못했고, 오랫동안 지냈던 정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눈물의 작별인사를 하며 떠나야 했다.
몇 년간 이어진 압박을 잘 버텨내긴 했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서서히 상처와 불안이 쌓여갔고,
나를 계속 흔드는 그녀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으로 힘들었다.
복수심에서 시작된 감정은
점차 ‘나 자신을 위한 결심’으로 바뀌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의심하고 말렸던 40대의 공부는 정말 쉽지 않았다.
체력도,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았고, 반드시 붙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는
매일 결의를 다지며 복수심 하나로 버텼다.
초수 땐 기간제 근무와 병행하며
2차 시험에서 1점 차이로 고배를 마셨고,
재수 땐 직장도 그만두고 모든 걸 걸고 도전해
합격이라는 결과를 손에 넣었다.
합격 발표 후
그녀에게서 축하와 사과의 메시지가 왔다.
하지만 '잘 지내시라'는 말 이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필요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일이 없어서 임용을 결심한 것이 아니었다.
매년 일이 있었고, 내가 맡은 자리를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옮겨 다녀야 하는 삶,
언제든 누군가의 결정으로 바뀌는 내 위치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계약직도 소중한 일터였지만,
나는 더 이상 떠날 준비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매년 다른 공간에 적응하며 연말이면 내년을 걱정하는 대신,
한 자리를 오래 지키며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내 삶의 계획을 장기적으로 세우고 실천하고 싶었다.
그 갈망은 어느 순간 절박함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40대에 임용고시 도전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나 역시 두려웠다.
남편 나이도 가끔 헷갈릴 만큼 총기가 떨어졌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 계속 이런 말이 들려왔다.
그래서 나는 학교가 아닌 도서관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다음 10화에서는
보건교사의 하루, 그리고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진심의 메시지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