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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 Oct 27. 2020

내가 범퍼가 되어 줄게

일상적 혼란이라는 말이 있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게 되는 성가시고 짜증 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말한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가족의 실직이나 사고와 같은 큰 사건만큼 일상적 혼란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폭설로 인해 어린이집 차량을 운행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 문자 한 통에 출근 준비를 하던 엄마 아빠는 갑자기 멘붕이 된다. 이제 나가면 택시 잡기도 어려울 텐데 아이를 누구에게 어떻게 맡기고 가야 하는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리느라 마음이 시끄럽다. 안 그래도 난감해진 출근길에 아이를 안고 전쟁을 치러야 한다.



선경이는 두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친정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시댁에서는 절대 아이를 봐줄 수 없다고 못을 박아서 맞벌이를 하면서 두 아이를 부부의 힘만으로 키우고 있다. 아침에는 조금 늦게 출근하는 남편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저녁에는 조금 일찍 퇴근하는 선경이가 아이들을 데려온다. 사내 부부여서 남편과 퇴근 시간 조율이 가능하다는 것도 선경이가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에 대해 선경이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일요일에 시간 되면 우리 집에 와 줘. 부부의 힘으로 아이를 키워 내겠다고 의지를 다지던 선경이의 SOS였다. 첫째를 낳고 본격 육아를 시작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선경이의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부부의 48시간 속에 있던 육아와 가사가 오롯이 선경이의 24시간 속에서 스케쥴링되어야 했다. 아침에 조금 서둘러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건 할 만했다. 선경이의 발목을 잡은 건 분리수거였다. 네 살짜리와 갓 돌이 지난 아이 둘만 집에 두고 나갈 수 없어 부엌 옆 베란다에 재활용 쓰레기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잠깐이면 될 일인데도 남편이 없는 일상은 그 잠깐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할 일이 많고 바빠서가 아니라 아이들만 두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파트 내에 있는 분리수거장에 다녀오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분리수거가 뭐야. 선경이는 맘 놓고 샤워도 할 수 없었다며 하소연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야 욕실 문을 열어 놓고 심야 샤워를 했다.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이런 것이었구나. 아이들과 소꿉놀이를 펼쳐 놓는 동안 선경이는 베란다를 몇 번을 드나들며 부지런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샤워까지 마쳤다. 조마조마하지 않고 혹시나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귀 기울이지 않고 마음 놓고 샤워를 한 게 얼마만이냐고 말하는데, 환한 선경이의 얼굴이 왠지 짠해 보였다.



아이가 있는 집의 일상은 쉽게 무너진다. 실제 육아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혼란은 말도 못 하게 다양하다.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야근하기만 해도 시간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갈 사람이 없어 동동거린다. 감기에 걸린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아픈 아이만 데리고 가면 될 것을 말짱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둘을 업고 안고 가야 하는 상황에 엄마는 눈물이 난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유치원 추첨이나 방과 후 수업 접수를 위해 엄마 아빠가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할 때도 아이를 모두 끌고 갈 수도 없고 아이들만 집에 두고 갈 수도 없어 난감하다. 아이를 봐주시는 이모님이 결막염이 걸렸다는 문자를 받으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런 일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잖아. 라며 사소하게 넘기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갑작스럽게 너무 자주 출몰한다. 일상이 원래의 궤도를 벗어날 때마다 엄마 아빠의 스트레스 게이지는 감당할 수 없이 치솟는다.


대안 없는 삶이니 늘 불안을 깔고 살 수밖에 없다. 아주 오래전에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던 때에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까지 불안하고 버겁지는 않았다. 가족들도 가까이 살았고, 정말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옆집에 잠깐 아이를 부탁하기도 했다. 요즘 육아 현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려 오고 딱딱 시간 맞춰 돌아가는 게 빈틈없이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 그건 완벽한 게 아니라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만 삐끗해도 탄탄하던 일상은 그대로 허물어진다.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도와줄 사람이나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언제 일상이 산산조각이 날지 모른다는 만성적 긴장이 감돈다.


내가 범퍼가 되어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에게 버릇처럼 말한다. 언제든지 불러. 올 수 있으면 올게. 내가 그들이 육아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일상적 혼란에서 오는 충격을 줄여줄 수는 있다. 감히 아주 이상적인 상황을 꿈꿔 본다. 아이를 키우는 집마다 범퍼가 되어줄 만한 이모 고모 삼촌이 세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 3-4시간 정도는 빌려 써도 미안하지 않고 그저 고마운 친구들이 가까이 산다면 통제되지 않는 일상에서 오는 불안과 긴장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런 이모가 되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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