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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 Oct 28. 2020

엄마의 하루에 평범한 순간이란 없다

언니가 재밌는 걸 보여주겠다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받아 들었는데 문자를 보고 너무 웃겨서 마시던 물을 뿜었다. 3년 전에 언니가 아빠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할아버지가 된 아빠에게 언니는 매일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보고 했다. 언니가 보여준 문자 메시지는 주니지니가 태어난 지 3일째 되던 날 아빠에게 보낸 문자였다. 언니는 많이 컸지요. 라면서 아이들 사진 다섯 장을 보냈다. 겨우 3일 된 아기인데 커 봐야 얼마나 컸겠는가. 아직 피부는 새카맣고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이들을 두고 많이 컸다며 감동하는 언니의 문자였다. 이제 와서 그 상황을 보고 있자니 물을 뿜을 정도로 웃겼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할 말이 많아진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기하고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들이 매일 넘쳐난다. 누구라도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이와 함께한 하루에 대한 이야기는 퇴근한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전화기 넘어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삼촌까지 웃고 나서야 끝이 난다. 아주 사소한 일상도 모두 이야기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귀를 불러 모은다. 놀이터든 카카오스토리든 엄마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끊임없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쌓인다. 카카오스토리에 우리 아이가 자라고 있는 모습을 올려 두고, 또 옆집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반응하고 호응하고 응원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벌써 이렇게 컸다며 올라온 아기 사진은 아직 뒤집지도 못하고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는 아기 사진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많이 컸다고 동의하고, 어떤 사람은 아직 크려면 멀었다고 이야기한다. 엄마들의 그 호들갑스러움을 보고 있자면 귀엽기까지 하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면 그 얘기가 그 얘기다. 어제 이 집에서 일어난 일이 오늘 저 집에서 일어나고, 또 그다음 날은 옆집에서 일어날 뿐 비슷비슷한 일들이 돌고 돈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고 아이 크는 모습도 다 거기서 거기다.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집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인데도 우리 아이에게 일어나는 순간 아빠 엄마는 환호하고 열광한다. 대부분의 아이가 돌 전후로 직립보행을 시작한다고 해서 우리 집 아이가 홀로 선 그 순간이 특별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이가 새로운 것을 익히고 새로운 표정을 지을 때마다 집안에는 작은 소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호들갑스러웠던 일들은 곧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된다. 아이가 더 이상 쓰러지지도 않고 혼자 일어나 걷게 되면 아이가 일어나서 걷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그러니 아이가 주는 즐거움은 아이가 자랄 때 같이 느끼고 즐겨야 한다. 그 즐거움이란 것이 아이스크림과 같아서 그때 즐기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 아이들이 처음 일어섰을 때 환호하던 것들을 난데없이 열 살 때 되어서 그 즐거움을 만날 수는 없다. 아이가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돼 버렸으니까.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특별한 일이 되고 특별한 일이 곧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아이들이 클 때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순간순간이 새로웠는데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크고 나서 그 순간을 되돌아보면 당연한 일을 두고 감동했던 내가 이렇게 코미디처럼 웃기지 않는가.



육아의 즐거움은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이유와 같다. 영화의 줄거리를 알기 위해 영화를 보는 사람은 없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심리 변화에 공감하고 대화 한마디를 음미하고 배경에 감탄하면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순간순간 배우의 몸짓과 표정, 대사에 반응하면서 짜릿함과 즐거움, 폭풍 눈물로 공감을 해야 진정 영화를 제대로 감상한 것이다. 기꺼이 1만 원을 내서 영화를 보는 이유는 그 순간을 맛보기 위한 것이지 주인공은 그렇게 행복해졌습니다 라는 결론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같다. 아이가 처음으로 밥을 뜨는 순간, 찡그림과 윙크, 아빠라고 하는 순간, 어설픈 노래실력, 뒤집기를 하는 순간, 방긋거리는 표정, 음악이 나오면 무조건 흔들어대는 엉거주춤 흥겨움, 몸부림에 가까운 춤솜씨, 톡 쏘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표정, 낙엽 위에 있을 때와 하얀 눈 위에 섰던 순간,,, 이런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아이를 키운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두 살이 되었습니다.라는 한 줄을 위해 육아에 참여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만큼 보람 없고 재미없는 일도 없다. 또 그 아이만큼 슬픈 아이도 없다.


엄마의 하루에 평범한 순간이란 없다. 엄마는 회사에서 돌아온 아빠와 아이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 아이의 작은 일에 아빠도 호들갑스럽게 반응해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무심한 아빠가 그게 뭐? 다들 하는 거잖아. 라는 반응을 보이거나 나 오늘 피곤하거든.이라고 해 버린다면 엄마는 외로워진다. 애는 나 혼자 키우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이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것은 가장 쉽게 육아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아이가 어떤 옹알이를 했는지 맞장구치면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들은 힘이 난다. 누군가에게 아이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엄마들을 보고 있자면 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얼마나 근질거렸을까. 싶을 정도로 흥분한다. 순간순간 모아 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같이 즐거워하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엄마는 육아의 보람을 느낀다. 아이가 매일매일 어떤 기분으로 살아가는지, 어떤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됐는지, 어떤 기가 막힌 상황을 벌여 놨는지, 함께 기뻐하며 누리는 것이 육아다. 아이를 같이 키운다는 것은 순간순간의 작은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주는 것을 잊어버린 여자를 본다면

우리는 그녀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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