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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 Nov 01. 2020

전업엄마에게 휴가가 있다면

지선이에게 잠자리 준비는 힘들면서도 이제 하루가 마무리된다는 가벼운 설렘이 있는 시간이다. 첫째 연아에게 잠옷을 입으라고 건네주고, 둘째 준희 잠옷을 챙기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입혀주면 안 돼요?” 연아는 잠옷을 들고 지선이에게 말했다. 이럴 때마다 지선이는 혼란스럽다. 아이의 독립심을 키우기 위해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잘 타일러야 하는지, 애정이 필요한 순간이므로 다정하게 끌어안아줘야 하는지. 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지선이는 혼자 입도록 설득하는 쪽을 택했다.


연아가 잠옷을 다 입고 다시 엄마에게 왔다. 지선이는 혼자서도 잘했다고 칭찬해주려는데, 연아가 먼저 말했다. “엄마, 나도 아기지요?” 맞다. 연아도 이제 겨우 여섯 살이니 아기가 맞다. 세 살도 안 돼 동생을 맞이하느라 제대로 응석도 부려보지 못하고 의젓해져 버린 연아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졌다. 지선이는 잠옷을 혼자 입으라고 말한 것이 미안해서 “그러엄! 우리 연아도 엄마한테는 아기지이~”라면서 연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때였다. 연아는 “엄마, 그럼 나 아기니까 옷에 오줌 싸도 되지요?”하면서 그 자리에서 좔좔좔 오줌을 쌌다. 아이의 내복을 타고 흘러내리는 오줌은 바닥에 가득 깔아 놓은 겨울 이불들을 적셨다. 연아 마음을 이해하는 줄 알았는데, 그 순간에는 등짝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선이는 복잡한 감정이 뒤범벅되어 몰아쳤지만 지금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이불을 걷어내고 아이 샤워시키기부터 잠자리 준비를 다시 해야 했다. 머리가 핑 돌았다.


그날 밤, 지선이는 전화통을 붙잡고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 거냐며 대성통곡을 했다.



4년이 흘렀다. 내가 “이 이야기를 글로 써도 될까?”라고 물었을 때 지선이는 박수를 치면서 웃었다. “써. 써. 다 써. 넌 어쩜 그걸 다 기억하고 있냐. 야아~ 그 날 장난 아니었지. 그땐 심각했는데 이렇게 듣고 보니 진짜 웃기네.” 지선이는 마치 남 얘기하듯 자신의 지난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당 안 되는 슬픔과 분노로 휩싸였던 순간들도 지선이는 유쾌하고 따뜻한 시간으로 기억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경험할 때의 느낌을 실제 경험하던 순간의 느낌과 전혀 다르게 기억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경험자아와 기억자아에 대해 설명했다. 경험자아는 헤쳐나가는 자아로 “지금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기억자아는 우리가 삶 속에서 배운 것들을 지배하고 점수를 매기는 자아로 “전체적으로 어땠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엄마의 일상은 경험자아와 기억자아의 간극이 그 무엇보다 크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벌여 놓는 기막힌 에피소드들을 쏟아내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질문을 바꿔 “네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게 뭐야?”라고 물으면 “아이들”이라고 대답한다. 아이들이 선물처럼 주는 행복감은 다른 어디서도 얻을 수 없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그토록 힘들고 짜증스러운 일인 동시에 자신의 가장 행복한 경험이기도 하다. 기억 속에서 즐거웠던 일도 실제로 벌어질 때는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엄마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대부분 경험자아가 아니라 기억자아의 응답이다.


경험자아에서 벗어나 기억자아로 자신의 일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일상의 순간에서 살짝 발을 빼서 뒤로 물러나 바라봐야 한다. 직장인에게 주말과 휴가가 필요한 이유와 같다. 체력 충전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좀 더 넓은 시야로 보고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경험자아에서 기억자아로 돌아가 삶의 의미를 되짚어볼 기회가 된다. 그런데 육아를 하는 엄마에게 가만히 앉아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다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심지어 엄마들에게는 주말도 퇴근도 없다.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정직하게 반복된다. 휴가가 없는 엄마는 계속해서 경험자아의 힘듦만 느끼며 살아가는 셈이다.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아이가 우리 삶에 전반적으로 미치는 영향과 의미는 잊고 지낸다.


내가 전업엄마들에게 줄 수 있는 휴가는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쉴 시간을 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는 같이 쉬어 주는 것이다. 엄마가 병원 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 한나절 정도 아이들을 봐준다. 엄마는 아이를 맡긴 게 미안해서 최대한 빨리 오려고 하지만 그러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이들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 잠깐이라도 휴식을 누리라고 말한다. 가끔은 안방 문을 딱 잠가놓고 이제 일어나야겠다 생각이 들 때까지 낮잠을 자게 두기도 한다. 그런데 엄마들은 시간을 줘도 뭘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른다. 그 전의 생활을 모두 잊어버린 것처럼. 그런 친구들에게는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오라고 한다. 만나서 수다를 떨어봐야 또 아이들 이야기이며, 서점을 돌아다닌다고 해 봐야 육아 코너에서 어슬렁거리게 된다. 그렇더라도 아이들 없이 외출복을 입고 집을 나서는 순간 엄마의 기분은 이미 말랑말랑해진다.


전업엄마에게 휴가가 있다면 엄마들도 자신의 삶에 허락된 행복들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아무리 휴식을 누리더라도 아이들을 돌보는 순간의 슬픔과 힘듦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흘린 밥풀을 보면 또 눈을 부릅뜨게 되고 양치질을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사소한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이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 전과는 다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의 의미를 자꾸 꺼내 보고 엄마들은 훨씬 더 자주 웃게 될 것이다. 기억자아가 우리의 삶에 활기를 더해주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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