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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 Oct 30. 2020

손은 어떻게 씻는 것이 좋을까

나는 아이들 손 씻기는 걸 좋아한다. 쫀쫀한 비누거품을 짜 놓고 조물거리는 아이손을 보는 것도 좋고, 아이손을 겹쳐 잡고 몽글몽글 같이 비비는 것도 좋다. 물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이 신기해서 몇 번이고 물줄기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아이들이 세숫비누를 잡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거품을 내는 일이다. 아이들 손에 잡기에는 세숫비누가 너무 커서 자꾸만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진다. 세면대에 떨어진 세숫비누를 주워 주면 조심조심 양손으로 받아 드는데 비누는 아이 손에서 몇 바퀴 굴려보지도 못하고 또 세면대로 떨어진다. 비누가 떨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마음껏 웃는다. 목욕탕의 울림이 더해져 세배쯤 크게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아이들 손을 씻길 일이 있으면 밥을 먹다가도 기꺼이 아이들을 데리고 일어선다.



“손을 씻을 때는 먼저 이렇게 세면대 구멍을 막고 물을 받아 놓고 씻어야 해. 세면대에 있는 물로 비누 거품을 충분히 헹구고 나서 다시 물을 틀고 흐르는 물로 깨끗이 마무리하는 거야. 물을 계속 틀어 놓고 손을 씻으면 물을 낭비하는 거야.”


“이모, 낭비가 뭐예요?”


“응~ 불필요한데 물을 마구 틀어 놓는 거야.”


“불이 필요한데 물을 틀어 놓는 거예요? 불이 필요한데?"


“하하하하하. 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불필요하다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야. 낭비는 필요하지 않은데 쓸데없이 물을 계속 틀어 놓는 거야.”


주니에게 손 씻는 법을 알려주던 순간은 낭비와 불과 물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어 생각할 때마다 빙긋이 웃게 된다. 언니는 아이들 손을 씻기면서 물을 절약하는 습관을 익히기를 원했고 손을 씻거나 세수를 할 때면 세면대 구멍을 막고 씻겼다. 마지막에만 흐르는 물로 깨끗하게 헹궜다. 나도 아이들 손을 씻길 때는 그렇게 했다.



어느 날 나는 친구 아들인 윤수의 손을 씻기게 됐다. 나는 집에서 하던 대로 세면대 구멍을 막고 물을 받아 놓고 손을 씻기기 시작했다. 비누거품으로 신나게 비비고 세면대에 있는 물로 손을 헹구는데 윤수가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려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모, 왜 더러운 물로 내 손을 씻겨요?”


“응? 아, 윤수는 흐르는 물에 손을 씻는구나.”


“네. 엄마가 그렇게 해야 깨끗하다고 했어요.”


나는 “아니야. 물을 계속 틀어 놓고 흐르는 물에 손을 씻는 건 낭비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모가 몰랐어. 미안해. 깨끗한 물로 다시 씻자.” 하면서 윤수 손을 다시 씻겨주고 나왔다.



세상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법칙이 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는 사람마다 살아온 삶의 양식의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부부이고 형제자매이고 부모 자식이라고 해도 어른들마다 판단기준과 습관이 조금씩 다르다. 친구 사이라면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아이를 대하다 보면 같은 일을 두고 어른들끼리 다른 말을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나는 늘 아이들 앞에서 생각한다. 내 생각대로 아이를 키우려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생각하는 것을 아이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이모의 역할이다. 아이와 잠깐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것이 옳다며 이모의 방식을 고집하면 곤란하다. 내가 윤수의 손을 씻겨 주면서 낭비에 대한 개념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가 필요하다. 손을 씻는 사소한 습관에서부터 아이들에게 낭비를 가르쳐주는 게 좋다는 언니의 생각에도 동의하지만, 고인 물에 손을 씻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친구의 습관도 이해한다. 아이들을 만날 때는 아이들이 평소 생활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받은 그대로. 그게 내 생활방식이나 철학과 맞지 않더라도 그 순간에는 그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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