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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아 Mar 01. 2023

새로운 이름, 새로운 시작

Sannyas Initiation Celebration 산야스 입문식

“산야스는 다만 시작일 뿐이다. 사람들이 그들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세계, 아무것도 강요당하지 않고, 삶을 불구로 만들거나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는 세계, 사람들이 억압받지 않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세계, 즐거움이 마음껏 허용되는 세계, 경쾌함이 기준이 된 세계, 심각함이 사라진 세계, 심각성이 없는 진지함이 그리고 유희가 있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세계로 꽃 피어나갈 수 있는 그런 세계를 만드는 씨앗이다.”

- 오쇼 라즈니쉬, 반야심경 中                 




다음 날 저는, 오쇼 카페에 혼자 앉아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검은색 머리에 키 큰 백인 남자가 제 앞에 나타났어요. 함께 앉아도 되겠냐고 묻길래 흔쾌히 그러라고 했죠. 그의 이름은 ‘라니’. 이스라엘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당시 저보다 두 살 위인 스물다섯 살이었고, 190cm 가까이 되어 보이는 큰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남자였습니다. 서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뒤, 그는 전날 있었던 Death Celebration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오쇼가 좋아서 이곳에 왔는데 일주일만 있다가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곳에 있었고, 전 날까지 오쇼의 아침 강의가 ‘죽음의 예술’이었다고 알려줬어요.


“강의에서 오쇼가 뭐라고 했죠?”

“오쇼는 죽음을 축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저도 이제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러자, 그가 어둡게 그늘진 얼굴로 제게 되물었습니다.


“그럼 왜 지금 죽지 않죠?”

“그건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는 삶과 죽음, 둘 모두를 사랑하거든요. 그 둘은 같은 것이니까요.”


그는 제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식사도 끝나서 먼저 일어나겠다고 인사하고 나왔습니다. 당시 저는 어쭙잖게 강의에서 들은 말을 그대로 전달한 것뿐이었지만, 처음 만난 외국인과 그런 대화를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되어 스스로가 대견했어요.


그와 헤어진 뒤, 저는 ‘산야스(Sannyas)’를 신청하러 갔어요. ‘산야스’란 인도에서 출가를 의미하는 말로,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영적 수행을 결심한 ‘산야신’이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오쇼 아쉬람에서 산야신이 된다는 것은 오쇼의 가르침대로 삶을 즐기며 살아가겠다는 의지와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세속의 삶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었기에 오쇼의 산야신이 되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죠. 저 또한 그랬습니다. 사실 제가 산야스 신청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산야스 이름’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함께 온 R언니가 먼저 산야신이 되어 ‘프라바’라는 예쁜 이름을 받은 데다가 아쉬람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야스 이름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당시 제겐 산야스 이름을 통해 그곳에서 소속감을 얻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산야스 신청을 하고 난 뒤, 절차에 따라 두 명의 올드 산야신(Old Sannyasin)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올드 산야신이란 오쇼의 생전에 제자가 된 후 명상을 오래 한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로, 대부분 백인이었어요. 첫 번째 인터뷰에서 만난 산야신은 흰색 머리에 푸른 눈을 지닌 중년의 백인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어떻게 오쇼를 알게 되었고, 아쉬람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오쇼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명상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어요. 그리고 명상을 하고 Meera의 페인팅 클래스를 들으며 느낀 감상을 말해주었죠. 그녀는 제 얘기를 들으며 “Beautiful”을 연달아 내뱉었습니다. 무척 감동받은 표정이었어요. 두 번째 인터뷰를 한 산야신은 큰 키에 깡마른 백인 중년 남자였어요. 머리숱이 별로 없고 수염을 길게 길러서 수도승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건축을 전공했다고 하자, 자신도 건축가라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 사람 또한 제가 오쇼 아쉬람에 오게 된 계기와 명상 이후의 감상을 말하자 따뜻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기분이 좋았고 어떤 이름이 나올지 한껏 기대가 되었어요. 


다음날 저녁, 아쉬람에는 술과 DJ가 있는 댄스파티가 열렸습니다. 오랜만에 명상 음악이 아닌 클럽 음악을 들으며 춤출 생각에 즐거웠어요. 출입문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다 호텔 옆방에 묵고 있는 이웃 ‘브렌다’를 만났습니다. 갈색 곱슬머리 단발에 푸른 눈을 가진 40대 중반의 백인 여성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왔다고 했어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전날 만났던 ‘라니’가 제게 인사를 하고 갔어요. 그를 보더니 브렌다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제게 물었습니다.


“저 남자가 널 좋아하는 것 같아. 어떻게 알게 된 남자야?”

“아, 어제 아침에 오쇼 카페에서 만난 남자인데 이스라엘에서 왔대요.”


제 말을 들은 그녀는 깜짝 놀라며 미간을 찌푸리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는 유대인이야!” 

“아마도, 그렇겠죠?”


저는 그녀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의아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서양인들에게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어떤 이미지인지 잘 몰랐거든요. 아마도 그녀는 제게 유대인은 남자친구로 적합하지 않다는 뉘앙스를 전하려 했던 것 같아요. 


댄스파티에서의 라니는 처음 만났을 때의 진지하고 심각했던 모습과 달랐습니다. 재미있는 농담을 던지고 가벼운 장난을 치는 등 밝은 표정이었어요. 우리는 같이 맥주를 마시고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파티가 끝나고 라니와 함께 아쉬람을 빠져나왔어요. 늦은 시각이라 혼자 호텔에 돌아가는 게 무서웠는데 그와 함께 걸어가니 마음이 든든했어요. 그는 저를 호텔까지 바래다주었고, 우리는 호텔 앞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죠. 그런데, 아뿔싸! 호텔 정문이 잠겨있는 거예요. 당황했어요. 제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철문 걸쇠가 잠겨 있어서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손이 닿지 않았어요. 제가 깡충 대며 뛰는 모습을 보았는지 뒤돌아가려던 라니가 미소 지으며 다가와 손쉽게 철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고마웠어요.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붓다홀에서 그 주에 산야신을 신청한 사람들의 입문식이 열렸습니다. 그 입문식 행사를 Sannyas initiation celebration이라고 불렀어요. 토요일 저녁, 저는 붓다홀에 일찌감치 도착해서 행사가 시작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뮤지션들이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잠시 후, 붓다홀 앞쪽에 흰색 로브를 입은 밝은 갈색 머리의 백인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나타났어요. 그녀가 한 사람씩 이름을 불렀고, 호명을 받은 사람은 앞쪽으로 나와 '에너지 다르샨'을 받았어요.. 에너지 다르샨이란 올드 산야신 두 명이 앞 뒤로 앉아 새로운 산야신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나눠주는 의식으로, 입문식의 중심이 되는 절차였어요. 


마침내 제 이름이 불렸습니다. 저는 앞으로 나가 흰색 로브를 입은 두 명의 백인 여성 사이에 앉았어요.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이 되더군요. 두 사람은 제 가슴 위쪽과 등에 가볍게 손을 댔습니다. Heart Chakra라고 부르는 에너지 센터가 있는 위치였죠. 약간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몇 분 후, 에너지 다르샨이 끝나고 산야스 이름이 적힌 증서를 받았습니다. 


산야스 증서 (앞)


제 새로운 이름은 Ma Prem Najma. 


Ma는 인도어로 영어의 Mrs. 또는 Miss와 같이 여성을 지칭하는 경칭이었고, Prem은 Love, Najma는 Song/Poem이라는 뜻이었어요. Love Song, ‘사랑 노래’라니..! 너무 달콤한 이름이었습니다. 


산야스 증서 (뒤)


한국인 언니들, 이스라엘 남자 라니, 페인팅 그룹에서 만났던 일본인 남자 아키도와 일본인 여자들이 다가와 축하해 주었어요. 한국인 언니들은 제게 꽃다발을 선물해 주었죠. 즐겁고 기분이 좋았어요. 산야신이 되어 산야스 이름을 갖게 되니, 아쉬람에서 만난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다정하게 저를 대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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