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찡그린 미간과 내뱉는 한숨...경찰서의 첫 모습
언론사에 처음 입사하면 신입 기자들은 경찰서 생활을 합니다. 이른바 '하리꼬미'를 도는 수습기자들은 경찰서 기자실에서 2~3달을 먹고 자는 겁니다. 서울 성북구에 자리 잡은 종암경찰서에서 첫 수습기자를 시작했는데, 경찰서 민원실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찡그린 미간 사이로 느껴지는 삶의 고단함과 연거푸 내뱉는 깊은 한숨처럼 누군가의 삶도 우리네 인생도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민원실 군중을 지나 형사 과장실로 들어섰습니다. "안녕하세요 오00 과장입니다" 머리가 벗어진 과장님께서 의례적인 말투로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아직 기자 명함이 나오지 않아 미리 준비한 자기소개서 1장을 건넸습니다. 대학교 홍보대사, 주일학교 선생님 활동 등등. 사진 속에는 대학생활의 추억이 깃들어있었습니다. 과장님께서는 자기소개서를 한번 훑어보시고 그렇게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경찰서 주변의 어느 허름한 밥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반찬들 사이로 과장님의 얼굴이 희끗희끗 보였습니다.
■ 꽃 다운 나이로 국가 공권력에 짓밟힌 청춘들
기자 신규 교육을 왜 경찰들이 담당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과장님은 운을 떼셨습니다. 뭐 그럴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가깝고도 먼 사이가 경찰과 언론입니다. 20~30년 전만 해도 운동권 대학생들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수감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 중 몇몇은 언론사 기자가 됐고 국가 공권력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물과 기름같이 서로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과장님은 하던 말을 멈추고, 국가 공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셨습니다. 광주 5.18 당시에는 군인이 4.19 혁명 당시에는 경무대가 국민들에게 총구를 겨눴다는 겁니다. 국가 공권력은 원죄가 있다며 짧지만 강단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영화 '1987', '택시 운전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 1980년대 대한민국은 암흑기였습니다.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대학생 청년들이 불의에 항거했고, 군홧발에 꽃 다운 청춘들이 으스러졌습니다. 하늘을 뒤덮던 최루탄 연기에 눈물과 콧물이 비 오듯 쏟아지고 몽둥이에 군홧발에 몸 곳곳은 피투성이가 됐습니다.
가시지 않을 것만 같던 짙은 어둠은 그렇게 새벽을 지나 해맑은 아침이 됐습니다. 모두가 바라던 봄이 온 겁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공간 사이로 경찰 고위 간부의 모습 속에서 청년 이한열이 떠올랐습니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중퇴한 어느 대학생입니다. 지금 살아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대가 만든 대한민국입니다. 수없이 으스러진 이름 모를 청춘의 꽃이 짓이겨지고 그렇게 길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지금 우리 세대가 걷고 있는 겁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용기 있던 소수가 '열린 사회'로 다수 만들어
당시 그 말을 듣고 정신이 얼얼했습니다. 온몸에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경찰에 대해 관심도 없었지만, 경찰 조직에 대한 신뢰가 느껴졌습니다. 국가 공권력의 최전방에서 민중의 지팡이로 임했을 경찰생활에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20년 넘게 경찰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많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20여 년 어린 수습기자에게 본인의 업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국가 공권력은 원죄가 있습니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국민을 억압과 폭력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한때 광장을 메우던 뜨거운 함성은 이제 우리의 역사가 됐습니다. 용기 있던 소수가 다수가 된 겁니다. 그사이 정치교체, 세대교체, 인물교체도 이뤄졌습니다. 또한 과거사 정리도 이뤄지며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용기 있는 고백도 나오면서 반성과 성찰의 장이 마련됐습니다. 때문에 역사를 거스르는 사건들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또 누군가의 반성이 밑거름이 되어 앞으로의 생태계는 더욱 비옥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작가가 궁금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