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몰랐던 장승배기 율곡수목원 1부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전 우수상

by 방구석 지식in


무심한 듯 피어난 들국화들 뒤로 율곡수목원 한편에서 애절한 아리랑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음악을 따라 올라간 전망대에는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뒤로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자 노랫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곳에 이르렀고 하나둘씩 올망졸망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땅덩어리, 북녘땅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큰 글씨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전 70주년 유해발굴 사업' 플래카드. 오늘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자유는 순국선열들이 희생한 피와 땀과 눈물의 집결체인 듯, 그곳에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전쟁터에서 싸우다 희생된 호국영령들이 숨 쉬고 있었다. 조각조각 정돈된 뼛조각부터 군번줄, 총알 자국이 선명한 수통까지 전쟁의 참혹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상추쌈이 먹고 싶다던 어느 병사의 이야기부터 파란 눈의 아리랑까지 그들만의 사연을 간직한 율곡수목원. 오늘도 장승배기 고개를 넘는다.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유해를 뿌려다오"


영국의 어느 한국전쟁 참전 용사의 한마디다. 중공군 63사단과 치열한 혈전 끝에 극적으로 살아남은 노병은 힘주어 말했다. 찌그러진 수통과 녹슨 군번줄을 움켜쥐며, 할아버지는 한 명 한 명 전우의 이름을 가슴속에 새겼다. 가족과 생이별에도 고귀한 신념을 위해 기꺼이 지원한 병사부터 뼈대 있는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장교까지 노병의 머릿속에는 주마등처럼 이름들이 스쳤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팔 할이 연민이라는 노병은 이름도 모르는 낯선 한국땅에 어떤 연민이 남아있었을까. 국가의 부름 앞에, 자유와 민주주의 이름 앞에, 먼저 세상을 떠난 전우의 추억 앞에 노병은 녹슨 군번줄을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스캇 베인브리지. 녹슬고 찌그러진 군번줄 사이로 희끗희끗 이름이 보였다. 노병은 한국전 당시 영국 보병 웰링턴 공작 연대 소속의 이등병으로 '설마리 전투'에 참전했다. 파란 눈의 노병이 지긋이 눈을 감자 아리랑 노랫가락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1951년 4월 20일. 어엿한 봄을 알리는 꽃들이 산등성이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전쟁의 화마(火魔)를 모르는 듯 갈기갈기 피어있는 들국화가 곳곳을 수놓으며 군인들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임진강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장승배기 고개를 넘으려는 중공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UN연합군이 대치중이었다. 가파른 능선을 따라 오르니 임진강 너머로 울긋불긋 중공군 깃발이 보였다. 중공군 주공부대인 19병단은 문산-파평산의 국군 제1사단과 적성면-감악산-금굴산의 영국군 제29보병여단이 방어하고 있었다. 중공군에게 '임진강 벨트'를 내준다면 유엔군 주력부대는 물론 서울까지 위험한 상황. 지난 1.4 후퇴를 기억하는 스캇과 병사들은 그때를 생각하며 개머리판을 움켜쥐었다. 긴장한 탓인지 무거운 군장 탓인지 이른 댓바람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반도 젖줄을 차지하는 세력이 6.25 전쟁의 흐름을 가져갔다. 물줄기는 전쟁의 판세를 가늠하는 나침판이었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남한군은 낙동강벨트까지 밀려나며 배수진을 쳤다. 유엔군의 도움으로 남한군은 한강을 수복한 뒤 압록강 근처까지 진격하며 전쟁의 흐름은 180도 기울어졌다. 이후 중공군이 개입하며 남한은 1.4 후퇴했지만, 엎치락뒤치락하던 판세도 점차 균형점을 찾아갔다. 이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바로 임진강이었다. 북한군과 남한군의 전략적 요충지. 임진강은 한강의 제1지류로 경기도 연천에서 파주, 강원도 철원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남한에 중요했다. 서울을 지키는 주요한 지점이기도 했다. 특히 임진강을 품고 있는 파평산 부근의 장승배기 고개로 중공군과 UN연합군이 집결했다. 중공군의 입장에서 이곳은 넓게 흐르는 임진강 폭이 얕아지고 험준한 파평산을 피해 서울로 나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결전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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