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몰랐던 장승배기 율곡수목원 2부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전 우수상

by 방구석 지식in

"인해전술로 서울을 탈취해 마오쩌둥에게 노동절(5월 1일) 선물로 바치겠다" 펑더화이 조중연합군 사령관의 결심이 떨이지기가 무섭게 하늘에서는 붉은 비가 쏟아졌다. 1951년 4월 22일 밤, 서울 수도점령을 목적으로 중공군의 '춘계공세'가 시작됐다. 중공군은 장승배기 392번지를 비롯해 임진강을 넘었다. 머리 위로 빗발치는 붉은 빗줄기에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곳곳에서 폭발하는 굉음에도 중공군은 불개미처럼 쉴 새 없이 밀어붙였다. 임진강을 건너다 숨진 북한군의 시체들이 임진강을 핏빛으로 물들였지만, 이들은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스캇도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한국 1사단과 영국 글로스터 대대 병사들의 연합작전이었다. 임진강을 넘은 중공군을 UN연합군이 능선 위에서 공격했다. 이들이 진정한 6.25 전쟁의 게임체인저였다. 전방에서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후방은 전투태세를 재정비할 수 있었다.



"장승배기 고개를 사수하라" 병사들의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인해전술로 밀려오는 중공군의 파죽지세와 한계에 다다른 UN연합군. 피의 임진강은 곧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였다. 적군과 아군 할 것 없이 시체들이 산기슭을 점령했고 하얀 들국화들도 슬픈 듯 붉게 울었다. 찌그러진 수통과 찢긴 군복 사이로 스캇은 자신의 상처들을 보았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기약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래에 대한 근심과 걱정에 문득 가족이 생각났던 스캇. 총성이 빗발치는 전투현장에서 가슴속에 묻어둔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임신한 아내와 군복을 입고 찍었던 마지막 사진을 보며 울컥했다. 입영 열차에 몸을 실었던 때, 스캇은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내를 차마 보지 못한 스캇은 울고 있던 동료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던 노래가 맴돌았다. 살아서 돌아간다면 열심히 살겠다고 간절히 기도를 하던 찰나에 빗방울이 귓가를 적셨다. 끝까지 사수한다. 고개를 넘으려는 중공군과 이를 저지하는 UN연합군 사이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핏물과 땀과 눈물의 짠맛이 뒤범벅된 빗물이 스캇의 목구멍을 스쳐갔다.


"본인은 부상자와 함께 잔류할 것이므로 대대의 안전한 철수를 당부한다" 글로스터 대대의 제임스 칸 중령의 굳은 심지였다. 장승배기 고개가 중공군의 육탄 공격에 끝내 뚫리자 칸 중령은 이곳에서 10km 미터 남짓 떨어진 설마리로 둥지를 옮겼다. 장승배기 고개를 끝까지 지키던 한국군 1사단 역시 파평산 일대로 자리를 이동하며 최후의 성전을 준비했다. 우리와 함께한 전우들이 이곳에 묻혔지만, 역사는 그대들의 오늘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독려하는 간부와 위로하는 병사들은 손을 맞잡으며 뜨거운 포옹을 했다. 훗날 이들의 고립방어는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아아 그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70년이 지난 지금 임진강을 품던 산기슭에는 꽃들이 활짝 피었다. 누구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자랑스러운 아버지들이 묻힌 곳. 그대들이 그토록 바라던 미래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됐다. 자유와 평화라는 이름 앞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이름 없는 병사들. 그대들의 육신이 이곳에 평화의 씨앗으로 뿌려지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장승배기 고개는 그렇게 율곡수목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면적만 34.15ha에 달한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장승배기로 392번지는 역사의 아픔을 감내하듯, 아니 승화시키며 누군가의 꽃으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때의 아픔을 기억이라도 하듯, 사계정원에는 소나무부터 구절초까지 꼿꼿한 절개와 곧은 품성으로 율곡수목원을 지키고 있다. 민관군 합동으로 조성된 파주시 율곡수목원은 식물유전자원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생태학적, 문학적,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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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지막 소원대로 영국 참전용사 스캇의 딸 사라 씨는 지난 2005년 한국을 찾았다. 참전용사 50여 명과 함께 아버지 유골함을 들고 방한한 사라 씨는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한국을 그리워했다"라고 전하며 아버지의 유해를 한국 땅에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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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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