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 지식in Oct 29. 2023

뻐꾸기가 울 때까지 기다린 손흥민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라


손흥민, 팀을 위해 뛰어라. 팀은 하나다.

- 토트넘 다큐 <All or Nothing>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렸지만, 경기장에는 냉기가 흘렀습니다. 지난 2020년 토트넘과 에버튼 경기. 손흥민 선수가 락커룸으로 향하는 도중 팀의 주장인 요리스 선수가 쫓아가며 윽박지르고 고함을 칩니다. 표정은 울그락불그락 굳어져있고, 주먹다짐을 시전 하기 직전이었습니다. 휴식공간인 라커룸이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돌변한 상황. 왜 요리스는 유독 손흥민 선수에게 화가 나있었을까요. 당시 손흥민 선수는 볼이 뺏기는 상황에서 볼에 직접 관여를 하지 않았고, 역습을 위해 스프린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비 가담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요리스 선수는 볼을 빼앗긴 선수나 다른 공격수에게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그날 경기는 손흥민 선수의 골로 토트넘이 에버튼을 1대 0으로 이기며 끝났습니다.


토트넘 다큐멘터리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손흥민 선수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많았습니다. 축구변방 아시아에서 왔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EPL)는 전 세계에서 축구 스타들이 모입니다. 이른바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죠. 그래서인지 국가별, 인종별, 언어별 파벌이 생깁니다. 토트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무리뉴 감독 체제에서는 요리스와 은돔벨레, 시소코 선수들이 락커룸을 장악하며 선수진의 군기와 훈련 상황을 쥐락펴락했습니다. 프랑스 카르텔은 유명했습니다. 콘테 감독 체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국 순혈주의에 금수저 인맥이 총동원됐습니다. 부모님이 영국축구협회 회장에 혈연, 지연, 학연으로 맺어진 텃새는 상당했죠. 손흥민 선수는 결국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때를 기다린 손흥민...<Son or nothing>


울지 않는 뻐꾸기는 어떻게 울려야 할까요. 일본 대하소설의 <대망>에는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이 서럽더라도 때를 기다려야 하죠. 손흥민 선수도 주변의 텃새를 감내하며, 자신의 실력을 키웠습니다. 아시아인, 언어장벽, 식단조절 등 손흥민 선수가 넘어야 할 벽들은 많았습니다. 감독님들의 지시에 맞게 윙백부터 미드필더까지 포지션도 바꾸면서 연습했습니다. 무리뉴 감독시절 최전방 공격수를 하면서도 수비까지 가담했습니다. 체력을 갉아먹으면서 경기장을 누볐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연습장을 찾았고, 마지막까지 공을 찼습니다. 다음날 연습을 위해 10시 이전에 잠을 잤고, 여자친구도 없없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없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릴까요.


드디어 뻐꾸기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제2, 제3의 전성기를 다시 쓰는 손흥민. 토트넘의 축구스타 케인이 독일 명문팀으로 떠났고, 영국 현지 언론들은 앞다퉈 토트넘의 내리막길을 점쳤습니다. 새로 부임한 감독 역시 변변치 않은 경력이었죠. 그런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감독은 토트넘의 고인 물을 방출하고, 손흥민에게 전권을 줬습니다. 주장 완장을 채우고 스트라이커 역할을 준 겁니다. 그러자 스피드와 역습에 강한 손흥민의 장점이 되살아 났습니다. 손흥민 선수는 리그 8호 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바짝 쫓고 있습니다. 팀도 덩달아 상승세입니다. 유럽강호들을 잡아내며 10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갔습니다. 토트넘의 다큐는 All or Nothing이 아니라 <Son or Nothing>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줄줄이 탈락...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손흥민의 상승세를 보면서 전의를 가다듬고 있습니다. 저 역시 최근 이직 면접에서 줄줄이 떨어졌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합니다. 잦은 이직준비와 부족한 경험도 한몫했겠죠. 최근 면접을 본 경기도청에서도 관련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왜 세무직을 하다가 언론팀으로 가게 됐는지. 지금 있는 곳에서 5개월 만에 왜 경기도청을 지원했는지 압박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면접관께서도 지원자가 왜 지원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같은 6급이었죠. 지극히 상식적인 지적입니다. MBN 기자 경력도, <뉴스가 되는 진짜 스토리텔링 보도자료> 출간 경험도, 인사혁신처와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전 수상 경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더군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합니다.


당분간은 대학원 석사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며칠 전 어느 보좌관 형님을 만났습니다. 언론사 기자시절 비서관이었지만 9~10년 사이에 변한 게 없더군요. 언론홍보대학원 추천사를 부탁드리며 이런저런 조언도 많이 들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국회 보좌진으로 들어오는 것도 생각해 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출퇴근이 없는 고된 환경. 의원 한마디에 자리가 없어지는 파리목숨. 정쟁이 난무하는 국회. 매력적인 직장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생각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3년 뒤 대선캠프를 지원하고 2~3년 정도 홍보와 언론 관련 보좌진 생활을 하며 시야를 넓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요. 저 역시 뻐꾸기가 울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제 글이 다음 메인에 걸렸네요.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꿈은 이루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