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흩날린 민들레 청춘처럼
노량진에 오기까지
우리는 들길에 홀로 핀 이름 모를 꽃을 보았지,
산등성이 해질녘은 너무나 아름다웠네.
- 민들레 홀씨 되어 -
청초한 5월, 꽃피는 봄이면 민들레들이 거리를 수놓습니다. 갈기갈기 뻗어 나온 녹색 잎들 사이로 한 올 한 올 노란 꽃잎들이 수수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떨어져 내려왔다는 전설처럼, 바위틈에도 인도 사이사이에도 또 우리들의 마음에도 뿌리내리고 있는 겁니다. 민들레 꽃내음이 상춘객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듯, 저도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5월의 탄생화를 자랑이라도 하듯 민들레들이 산들산들 봄기운을 물씬 풍겼습니다. 그때도 그랬습니다. 언론사 수습기자 생활을 했던, 그해 5월도 경찰서 주변을 민들레 꽃들이 장식했습니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그래서 민초에 비유됐던 민들레꽃들을 뒤로하고 경찰서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경찰서 민원실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찡그린 미간 사이로 느껴지는 삶의 고단함, 내뱉는 깊은 한숨처럼 누군가의 삶도 우리네 인생도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오00 과장입니다" 형사 과장실에서 머리가 벗어진 과장님이 의례적인 말투로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대학교 홍보대사, 주일학교 선생님 활동 등등. 명함 대신 대학생활 추억이 깃든 자기소개서를 건넸습니다. 그렇게 사무적인 행동들이 이어졌고, 이후 과장님과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어느 허름한 밥집,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반찬들 사이로 과장님의 얼굴이 희끗희끗 보였습니다.
■ 꽃 다운 나이에 국가 공권력에 짓밟힌 청춘들
기자 신규 교육을 왜 경찰들이 담당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과장님은 운을 떼셨습니다. 사실 가깝고도 먼 사이가 경찰과 언론입니다. 20~30년 전만 해도 운동권 대학생들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수감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중 몇몇은 언론사 기자가 됐고 국가 공권력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과장님은 하던 말을 멈추고, 국가 공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셨습니다. 광주 5.18 당시에는 군인이 4.19 혁명 당시에는 경무대가 국민들에게 총구를 겨눴다는 겁니다. 국가 공권력은 원죄가 있다며 짧지만 강단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웠을 5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5월이었던 겁니다. 맞습니다. 영화 1987, 택시 운전기사에서처럼 1980년대 대한민국은 암흑기였습니다.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대학생 청년들이 불의에 항거했고, 군홧발에 꽃 다운 청춘들이 으스러졌습니다.
하늘을 뒤덮던 최루탄 연기에 눈물과 콧물이 비 오듯 쏟아지고 몽둥이에 군홧발에 몸 곳곳은 피투성이가 됐습니다. 가시지 않을 것만 같던 짙은 어둠은 그렇게 새벽을 지나 해맑은 아침이 됐습니다. 모두가 바라던 봄이 온 겁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허름한 밥집에서 경찰 고위 간부의 모습 속에서 청년 이한열과 박종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는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았고, 누구는 경찰의 모진 고문에 청춘이 사그라들었습니다. 지금 살아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대들이 만든 대한민국입니다. 수없이 으스러진 이름 모를 청춘의 꽃들이 짓이겨지고 그렇게 길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지금 우리 세대가 걷고 있는 겁니다. 경찰 고위간부의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정신이 얼얼했습니다. 온몸에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국가 공권력의 최전방에서 민중의 지팡이로 임했을 경찰생활에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자신보다 20여 년 어린 수습기자에게 본인의 업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대한민국 국가 공권력은 원죄가 있습니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국민을 억압과 폭력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한때 광장을 메우던 뜨거운 함성은 이제 우리의 역사가 됐습니다. 용기 있던 소수가 다수가 된 겁니다. 정치교체, 세대교체, 인물교체도 이뤄졌습니다. 또한 과거사 정리도 진행되며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용기 있는 고백도 나오면서 반성과 성찰의 장이 마련됐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또 누군가의 반성이 밑거름이 되어 새로운 길이 열린 겁니다.
■ 바람에 나부끼는 민들레 홀씨처럼...화합과 평화
"미안하대이 미안하대이 나는 할 말이 없대이" 박종철 언사의 아버지 박정기 씨 말입니다. 힘없이 흐느끼는 말투에서 그때의 처절함이 느껴졌습니다. 죽은 아들의 유골을 강가에 뿌리며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도 함께 강가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대 육신은 6평 남짓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영혼은 5월의 푸르른 바람과 함께할 겁니다. 갈기갈기 뻗어 나온 녹색 잎들 사이로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말입니다. 바람 따라 물결 따라 그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떠나가십시오. 사람들은 그대들을 기억할 겁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얼마나 더 큰 희생이 따라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밥 딜런의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누구도 모를 겁니다. 아마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니까요.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평화의 아이콘인 밥 딜런의 메시지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우리들 가슴속에 메아리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