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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유리조각

노량진에 오기까지

by 방구석 지식in


■ 느닷없이 찾아온 '참사'...인생의 전환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20대에 읽었을 때와 30대에 읽었을 때의 느낌은 조금 다릅니다. 한 권의 책도 이렇게 때에 따라 느낌이 다른데,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떨까요. 역시 때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을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저의 20대와 30대 느낌은 조금 달랐습니다.


20대 때는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하루에 5~6시간 자면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주말 이틀을 온전히 쉬어 본적도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였을까요. 제가 성취한 결과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30대에 들어서 이런 생각들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때도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 당직을 서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출근해 아침 뉴스 기사를 쓰고 있던 겁니다. 아침 기사를 다 쓰고 친구 약속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고가 터졌습니다. 세월호 참사였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제 인생은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뉘게 됐습니다.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겁니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입니다.



■ '전원 구조' 오보...분향소에 걸린 졸업사진들


친구와 경기도 안산의 합동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넓게 차려진 분향소에는 학급별로 사진들이 걸려있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의 교복 입은 사진들이 보였는데, 졸업식을 떠올리게 했지만 사실은 장례식장이었습니다. 하나하나 찬찬히 얼굴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고 당시 정부의 구조를 기다리다 하염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젊은 영령들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또 다른 사연도 있었습니다. 어느 중년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세월호에 오른 중년부부는 그날이 마지막이 된 겁니다. 뜻깊은 기념일이 누군가에게는 지옥 같은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중년 부부는 제 고등학교 친구의 부모님이었습니다.


유리조각들을 집어삼킨 기분이었습니다.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가슴속에는 피가 났습니다. 사고 당시 통신사의 속보를 받아 모든 방송사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를 쏟아냈습니다. 저 역시 야간 당직을 서면서 기계적으로 속보를 전달했습니다. 분향소에 걸린 영정사진들을 보면서, 어느 중년 부부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면서 그때 일은 제 가슴속에 주홍글씨로 남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지식들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 주홍글씨로 남은 이력들...유리 조각을 삼킨 듯


사실 저는 경기도 안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안산 단원고등학교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때는 서강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운 좋게도 서강대학교 홍보대사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 저의 이력들 때문에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가볍게 지나치기 힘들었습니다. 그때의 일들에 부채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윗분들께서 좋게 봐주셔서, 저는 나쁘지 않게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7살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종편 언론사에 입사했습니다. 힘들었지만 열심히 수습기자 생활을 했었는지, 언론사의 꽃이라 불리던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도 28살에 시작했습니다. 서강대학교 출신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언론사 내에서 저를 염두에 두고 있던 게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언론사 동기들보다 더 넓은 사회경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산과 같은 경험들이 어느 순간 저의 부채로 돌아왔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저의 지난 삶들을 되돌아보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누군가는 2014년 4월 16일 그때로 시간이 멈춘 채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었습니다. 심장 깊게 박힌 송곳은 점점 저를 파고 들어왔습니다. 저의 삼십 대 인생은 질풍노도의 삶이 됐습니다.


그때를 기억하면서 또 되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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