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 지식in Sep 22. 2022

빗물의 짠맛과 소주의 단맛

노량진에 오기까지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 시작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첫 문장을 내뱉고 준비한 내용들을 이어갔습니다. 지난해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지난 1년 동안 이곳 면접 준비를 했습니다. 필기 준비도 시작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대여섯 살 어린 친구들에게 귀동냥을 하며 경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행정고시 기출문제도 직접 손으로 쓰면서 공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는 분들을 통해 기업의 중요한 사항들을 점검하며 면접 준비도 꾸준히 했습니다. 올해 면접에서 떨어지면 더 이상 이곳 기업과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렇게 면접은 끝났지만, 아쉬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맺음말을 30초 동안 했지만, 지난 2년 동안 고생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휴대전화로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인사채용 담당자입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우리 회사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면접에 정말 아쉽게도 저희와 함께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원자분의 역량과 자질은 우수하나 이번 저희 채용 목적과는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소중한 시간을 내어 주신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귀하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응원하겠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습니다. 또 떨어진 겁니다. 한국거래소(KRX)를 1 지망으로 준비했지만, 연거푸 떨어지면서 결과는 허탈했습니다. 한국거래소에서 지필 한 '히든챔피언의 길을 묻다'를 비롯해 관련 뉴스들도 틈틈이 챙겨 봤던 노력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겁니다. 중소, 중견기업들의 자금 숨통을 틔어주며 대한민국 곳곳에 혈액과도 같은 유동성을 공급하는 KRX를 위해 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30대 중고 신입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30대의 취업준비생 생활은 낙방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실 20대 때는 제가 가고 싶은 기업들을 골라서 갔지만, 그건 옛날의 허상이었습니다. 열정과 패기만으로 뚫어보겠다고 생각했던 바늘구멍들은 좁기만 했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마음을 부여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언론사 기자 경력과 늦은 나이 때문이었을까요. 금융권 공사를 비롯해 쓰는 곳곳마다 떨어졌습니다. 기자 업무를 하다가 왜 이곳에 지원했나요? 적응을 못했나요? 누구와 싸웠나요? 줄줄이 따라다니던 꼬리 질문이었습니다. 이런 비슷한 질문은 심지어 면접이나 공부 관련 스터디에서도 따라다녔습니다. 고구마를 삼킨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던 겁니다.


사실 지원자의 이전 경력은 누군가에게 색안경을 씌워 주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저는 기자 지망생도 아니고 예능 MC 지망생이었다고 사실대로 말해봤지만, 공염불로 되돌아왔습니다. 어떤 기업은 저의 경력에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뽑지는 않은 곳도 몇몇 있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그랬습니다. 면접만 놓고 봤을 때는 합격이라도 한 줄 알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탈락 문자였습니다. 역시는 역시였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감사의 인사를 받아야 할까요. 한동안 부모님 얼굴 보기 힘들었습니다.



■ 취업준비생 86만 명 시대...'고용한파' 시련에 위로


'청년을 위한 나라는 있는가' 최근 지상파의 어느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청년 취업률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2030 취업준비생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간다고 합니다. 보여주기 식 일자리 대책에 숫자놀음 고용지표까지 청년이 빠진 청년 일자리 정책에 맥이 풀렸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세대보다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지만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고 합니다.


비단 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다가 스타트업 취업준비생이 된 어느 청년부터 수십 차례 아니 수백 통의 불합격 통보에도 오뚝이처럼 다시 취업준비를 시작하는 취업준비생들까지 있었습니다. 빗물의 짠맛과 소주의 단맛 같은 경험들이 많았습니다. 취업준비생 86만 명 시대에 고용한파와 좌절과 싸우는 대한민국 모든 취업준비생들을 응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깟 종이 한 장과 명함의 두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