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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Oct 03. 2022

평평한 운동장과 유쾌한 복수

노량진 언저리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보다 영웅적인 복수는 없다.
 시기하는 자는 고통 속에서 영원히 산다.

- 사람을 얻는 지혜(발타자르 그라시안) -



노량진에도 비슷한 명언이 있습니다. 모두가 안된다고 손가락질받았다면 합격으로 당당하게 복수하라는 겁니다. 공무원 수험생 '1타' 전한길 강사가 수업시간 때마다 강조하는 말입니다. 찰나의 순간은 금방 지나가지만 합격의 결과는 수험생의 자존감을 높여줄 것이라 강조했습니다. 작은 것들에 일희일비하면서 감정 소모를 하지 말고 그 시간에 본인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빗물의 짠맛과 소주의 단맛을 경험한 본인의 경험이 있었기에 교과서 같은 명언이 가슴속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수십억 원의 빚더미에서 남들이 다들 안된다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버티고 버텨 오늘의 자리에 선겁니다.


노량진 수험가만큼 평평한 운동장은 없습니다.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학벌과 학점, 나이와 성별에서도 관대합니다. 스카이 출신의 불합격생들도 많지만, 뚜벅이처럼 공부한 고졸 출신의 합격생과 항암제를 먹으면서 버틴 경단여 여성까지 유쾌한 복수극들이 넘쳐납니다. 이해력과 사고력도 중요하지만, 암기력과 순발력도 상대적으로 중요한 시험이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만 믿고 공부를 소홀히 하면 떨어지기 십상입니다. 자신을 높이면서 누군가에게 적이 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 빚보증으로 25억 날려...뼈저린 경험으로 위로


수험생 때 전한길 선생님의 사연을 보고 들으면서 심심한 위로가 됐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며 유쾌한 복수를 했습니다. 2000년대 초, 대구에 있는 어느 학원을 인수했는데, 폭삭 망한 겁니다. 빚만 무려 25억 원이었습니다. 집안 곳간을 탕진하고 변변히 갈 곳도 없었고 방안 곳곳에는 빨간색 압류딱지가 붙은 겁니다. 말 그대로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내뿐만 아니라 형제들의 재산까지 모두 끌어들여 빚보증을 서면서 하루에도 여러 번씩 자살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훗날 전한길 강사는 뼈저린 반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책을 썼는데, '창피함을 무릅쓰고 쓴 나의 실패기'가 그 책입니다.  


본인의 처절한 '사무침'이 있었기에, 공무원 수험가에서 멘토로 불립니다. 인생 낭떠러지에서 허우적거리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도 있다며, 그때를 생각하면서 지금도 겸손하게 살고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고 전했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을 시기하는 질투들도 훗날을 위해 하루하루 준비하라는 겁니다. 그때의 울림이 따스한 메아리가 되어 노량진 수험가뿐만 아니라 직장과 일상생활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꽃보다 전한길'이라는 유튜브가 지금도 운영되는데, 20만 명의 구독자수가 넘습니다. 저도 종종 챙겨보고 있습니다.



■ 시궁창에서 유쾌한 복수극...한국사회 축소판 노량진


노량진 수험가는 비단 학생들뿐만 아니라 강사들 중에서도 유쾌한 복수를 한 사연들이 많습니다. 수십억 원의 빚더미에서 희망을 꿈꿨던 전한길 강사부터, 10시간 마트에서 서서 일하는 어머니를 생각해 대학교에서 노숙하며 공부한 전효진 강사, 대학교에서 잘리고 공사판을 전전하며 세무사 시험에 뒤늦게 붙은 이진욱 강사, 전 남자 친구에게 차였지만 독기와 깡으로 회계사 시험에 동차 합격한 오정화 강사까지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습니다. 배고픈 시절, 눈물에 젖은 빵을 먹으며 자신들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버텼습니다. 노량진 수험가에서 강사들 역시 단순히 학벌만 좋고 실력만 높다고 잘 풀리는 곳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 모두는 시궁창에 있지만, 몇몇은 별을 보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강사들도 그랬던 겁니다.

 

노량진 수험가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빈부격차가 있고 지역과 계층, 세대를 아우르며,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엿볼 수 있듯이요. 한국 사회의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있는 곳이지만 반대로 가장 열려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비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누군가의 땀방울과 노력의 가치는 배신하지 않는 곳입니다. 합격의 그날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울면서 공부하는 수험생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울어야 웃을 수 있냐는 어느 수험생의 시름에서 저 역시 애잔함을 느꼈습니다.


비록 출발선상은 달랐다고 할지라도, 누군가 노력의 땀방울은 다 비슷할 겁니다. 수험생들이 세상에 떠나 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잘 돌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의 합격을 기다리는 소중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하고 있음을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노량진 수험생들의 유쾌한 복수 이야기들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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